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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50709 나무 멍에를 맨 예레미야

2015.07.13 10:10

이주현목사 조회 수:84

150709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예레미야27:1-22

. 내 용: 거짓 예언자의 예언

1. 예레미야에게 나무 멍에를 메고 가서 시드기야 왕과 이웃 왕들에게 전하게 하신 하느님.

2. 바빌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예언자들의 출현을 예고함.

 

. 묵상 말씀: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빌로니아 왕을 섬겨서 살아남도록 하여라”(렘27:17).

1. 나무 멍에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의 채를 잡아매기 위해 소나 말의 목에 가로 얹는 둥그렇게 구부러진 막대 기구를 의미합니다. 소 두 마리가 끄는 겨리의 경우, 일자(一字)로 된 멍에도 있습니다. 이 멍에로 인하여 인간은 농사일이나 이동 수단을 움직이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는 나무 멍에를 왜, 예레미야에게 메고 가서 전하라고 하셨을까요? 다른 게 아닙니다. 그 멍에는 유다와 이웃나라들에 대한 바빌론의 통치, 곧 느브갓네살 왕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멍에를 메라는 것은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그 바빌론도 망하게 될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바빌론의 통치를 수용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반바빌론 동맹을 구상하면서 이웃나라 왕들을 불러 모아들였던 시드기야와 그의 반바빌론 동맹에 협력하기 위해 모인 이웃 나라 왕들에게 그런 예언을 선포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신념과 생각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해지는 하느님 뜻이라는 것입니다.

2. 거짓 예언

바빌론의 통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바빌론과 그의 왕을 섬겨야 한다는 예언을 선포했던 예레미야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신의 의지와 바람과 전혀 다른 내용을 선포해야만했던 예레미야를 그래서 우리는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나의 기쁨은 사라졌다. 나의 슬픔은 나을 길이 없고, 이 가슴은 멍들었다”(렘8:18)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낮이나 밤이나 울 수 있도록, 너가 나의 머리를 물로 채워 주고, 나의 두 눈을 눈물샘이 되게 하여 주면 좋겠다’(렘9:1)고 탄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탄식의 소리가 하염없이 울려 퍼질 때,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거짓 예언의 내용은 ‘바빌론 왕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바빌론에 끌려간 포로들과 성전 기구들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것’(14, 16)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저항을 하라는 것이지요. 저항을 포기하라는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거짓 예언자들이 남아있는 것은 그 거짓예언의 속성 때문입니다. 바로 달콤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