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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50925 하느님을 대하는 예언자의 자세

2015.09.25 23:20

이주현목사 조회 수:76

150925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에스겔 1:15-28

. 내 용: 하느님을 대하는 예언자의 자세

1. 네 바퀴의 기이한 형상과 네 바퀴를 머리 위에 창공 모양의 덮개 위에 자리한 보좌 현상을 본 예언자.

2. 그러한 환상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예언자.

 

. 묵상 말씀: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겔1:28).

1. 환상

본문은 에스겔에게 ‘하느님이 보여주신 환상’(겔1:1)이라고 했습니다. 환상(幻相)은 사전적인 의미로, 현실적 기초도 가능성도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의미합니다. 허망한 것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에스겔이 허상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보여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그 부분을 환상(fantasy)으로 번역하지 않고, 환상 보다는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시각적인 광경을 의미하는 ‘visio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인간이 지닌 생각과 열망이 뇌의 작용으로 만들어낸 그런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에스겔에게 내려주신 그런 신비스러운 풍경들인 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네 생물을 움직이는 네 바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네 바퀴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나타나는 데, 그 첫 번째는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였다’(18)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이 가고자 하는 데로 갔다’(20)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의 머리 위에 창공 모양의 덮개와 그 덮개 위에 광채가 나는 ‘보좌 현상’(26)을 보여주셨습니다.

2.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예언자

그러한 환상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은 했지만 그 모습이 그림으로 언뜻 그려지질 않습니다. 아마도 예언자 에스겔도 보긴 했지만, 그것을 인간의 말이나 글로 다 표현을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스겔 자신도 표현은 했지만 자신도 잘 그려지지 않는 그런 하느님의 모습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말과 글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범주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은혜의 세계를 인간의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눈이 가득한 바퀴, 그리고 네 생물 머리 위에 있는 창공 형상을 한 덮개를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어디 그 뿐인가요? 광채와 불꽃같은 것이 감싼 보좌 현상은 그려지나요? 본문에 등장하는 파편화된 표현들- 청옥, 불꽃, 광채, 무지개-은 사실 정확한 기술이 아닙니다. 에스겔이 자시의 삶 속에서 경험했던 내용들을 동원해서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묘한 모습을 대하는 에스겔의 자세입니다. 에스겔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28)고 했습니다. 하느님 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의지의 표현인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