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26 내상을 입으신 하느님
2016.10.27 20:17
161026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에스겔20:1-31
. 내 용: 내상을 입으신 하느님
1. 이스라엘 장로들이 주님의 뜻을 물으려 했으나,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느님.
2.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시는 방법.
. 묵상 말씀: “내가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을 망하게 하여 내가 주인 줄 그들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겔20:26).
1. 주님의 뜻을 묻지 못하게 하시는 하느님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장로 몇이 하느님의 뜻을 묻기 위해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이스라엘의 현실 앞에서 어찌 해야 할지, 또한 앞으로 어찌 될 지를 묻기 위해서였을 터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러한 질문 자체를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너희가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나 주 하느님의 말이다”(3).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 후, “그런데도 내가, 너희가 나에게 묻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느냐?”(31)는 말씀으로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암시 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집트 노예시절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돌보심과 은총을 소개하면서, 끊임없이 타락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이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22). 어찌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하느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너희들이 한 행위를 돌이켜 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2. 하느님의 내상
하느님의 속성 가운데 우리는 인격을 거론합니다. 인간이 지닌 성정, 인품과 성품을 하느님도 지니고 계시다는 뜻이죠. 그래서 하느님도 슬퍼하시고 분노하시고 시기와 질투심을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자존심도 지니고 계심을 오늘 본문을 통해 살필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8)이었지만,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 붓지 않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것은, “이방 민족이 보는 앞에서 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9)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돌봄과 은총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광야에서조차 규례를 따르지 않고 반역을 일삼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이끌어 낸 것도 “바로 그 이방 사람들의 눈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14)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규례를 지키지 않고 반역하는 무리들에게 진노와 분노를 광야에서 쏟아 붓고 싶었지만, “그러나 나는 내 이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22)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이름에 담긴 존귀함, 그 이름으로 맺은 언약의 신실함, 하느님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친히 내상을 입으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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