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베델의 늙은 예언자(왕상13:11-32)
2024.11.04 06:35
24110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열왕기상 13:11-32
. 내 용: 베델의 늙은 예언자
1. 유다로부터 온 예언자를 다시 집으로 초대한 베델의 늙은 예언자, 그는 거짓말로 속여 유다로부터 온 예언자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함.
2. 하느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유대로부터 온 예언자는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임을 당함.
3. 베델의 늙은 예언자는 주검을 수습하여 장사 지내고 후에 자기 시신을 그의 곁에 묻어 달라고 요청함.
. 묵상 말씀: “당신은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당신의 주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왕상13:21).
1. 참 속상할 만한 일
이해하기 힘들고 속상하다는 심정, 오늘 말씀을 읽으며 느끼는 솔직한 감정입니다. 실제로 관계를 따져 그 책임을 묻는다면, 사자에게 물려 죽을 사람은 베델의 그 늙은 예언자입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초청하는 여로보암 왕의 요청도 뿌리치고 돌아가는 유다의 예언자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속여 말씀을 어기게 한 사람이 바로 베델의 그 늙은 예언자가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한 이는 유다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서에 나타난 심판의 원리라는 게 보입니다. 세상의 원리와 다른 원리가 작동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인 제공자는 차치하고 일의 당사자가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와의 유혹과 꼬임에 넘어간 아담이었지만 그의 해명과 변명은 하느님 앞에서 심판으로부터 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질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잘못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불순종과 죄에 대한 하느님의 단호하심과 그 기준의 절대성을 볼 수 있습니다.
2. 늙은 예언자
그 베델의 늙은 예언자가 자꾸 맘에 걸립니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당시 예언 활동을 했다면 유다로부터 온 예언자에게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 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절대적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줬다는 미안한 맘에서, ‘고맙다’라는 표시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 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거짓말’로 속여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그 동기가 분명하게 나타나지도 않고 맘에 와닿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그의 허접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나타날 파장은 예상이나 한 건지, 않았다면 무지한 거요, 못했다면 무능한 예언자일 것입니다. 어쨌든 베델의 그 늙은 예언자는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귀담아듣고 맘에 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말씀 앞에서는 인정도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그 어떤 말씀의 절대성과 그 말씀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가다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