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30 욥의 잘못과 하느님 응답
2013.04.30 07:09
||0||013043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33:1-16
. 내 용: 엘리후의 말- 욥의 잘못과 하느님의 응답
1. 욥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 지적. 즉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 한 것과 하느님께 원망한 사실.
2. 하느님이 응답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함.
. 묵상 말씀: “하느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욥33:14).
1. 엘리후의 지적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했던 엘리후는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욥에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비유로 말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엘리후는 아예 대놓고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 어른께 감히 말합니다. 어른은 잘못하셨습니다”(12). 지적한 사실은 맞지만 그것을 잘못한 것이라고 과감하게 지적하는 모습이 상당히 저돌적입니다. 욥이 불평을 하고 탄식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비명소리나 신음소리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곁에서 욥이 당하는 고난을 보기만 한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난을 위로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모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고난을 죄와 연결시키는 당시의 정서와 종교적 수준을 가늠하게 합니다. 종교적인 확신이 자칫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2. 하느님의 응답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욥이 원망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께서 하시는 모든 불평에 일일이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느님께 원망을 할 수 있습니까?”(13)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욥의 경우 그 뜻을 모르니 답답할 뿐 아니라 더욱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욥의 불평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이에 대하여 엘리후는 하느님의 응답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말씀을 하시되 사람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를 못한다’(14)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지적은 맞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호소와 간구를 하느님은 다 아십니다. 아신다는 것은 그에 대한 당신의 뜻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뜻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전달할 뿐입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그 때는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의식할 수 없는 때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15) 하느님의 응답이 우리의 의지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때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진정한 기도는, 간절한 호소 뿐 아니라 그 분의 뜻과 응답을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읽은 말씀: 욥기33:1-16
. 내 용: 엘리후의 말- 욥의 잘못과 하느님의 응답
1. 욥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 지적. 즉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 한 것과 하느님께 원망한 사실.
2. 하느님이 응답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함.
. 묵상 말씀: “하느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욥33:14).
1. 엘리후의 지적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했던 엘리후는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욥에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비유로 말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엘리후는 아예 대놓고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 어른께 감히 말합니다. 어른은 잘못하셨습니다”(12). 지적한 사실은 맞지만 그것을 잘못한 것이라고 과감하게 지적하는 모습이 상당히 저돌적입니다. 욥이 불평을 하고 탄식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비명소리나 신음소리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곁에서 욥이 당하는 고난을 보기만 한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난을 위로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모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고난을 죄와 연결시키는 당시의 정서와 종교적 수준을 가늠하게 합니다. 종교적인 확신이 자칫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2. 하느님의 응답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욥이 원망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께서 하시는 모든 불평에 일일이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느님께 원망을 할 수 있습니까?”(13)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욥의 경우 그 뜻을 모르니 답답할 뿐 아니라 더욱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욥의 불평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이에 대하여 엘리후는 하느님의 응답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말씀을 하시되 사람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를 못한다’(14)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지적은 맞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호소와 간구를 하느님은 다 아십니다. 아신다는 것은 그에 대한 당신의 뜻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뜻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전달할 뿐입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그 때는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의식할 수 없는 때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15) 하느님의 응답이 우리의 의지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때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진정한 기도는, 간절한 호소 뿐 아니라 그 분의 뜻과 응답을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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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웅
2013.04.3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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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2013.04.30 15:28
그렇게 들릴 수도 있어 자구 수정 좀 했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간구 뿐 아니라 그 분의 뜻을 헤아리고 들으려는 자세"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한 편으로 치우쳤군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하면 하느님께 호소만 하고 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
조재웅
2013.05.01 06:31
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약간 유머러스하게 엄살을 핀거 였는데....
하지만 말씀덕분에 간구하기만 했던 기도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보려는 노력을 더 해보려 합니다.
세심하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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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도는 간구가 아니라 그분의 뜻과 응답을 듣는 것"
이라 하시니
지금까지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로만 일관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