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29 젊은 엘리후의 등장
2013.04.29 07:05
||0||0130429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32:1-22
. 내 용: 엘리후의 등장
1. 욥과 세 친구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엘리후가 말 할 기회를 갖고 등장함.
2. 욥을 정죄하려는 세 친구의 태도와,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하느님의 책임을 언급한 욥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함.
. 묵상 말씀: “사람에게 슬기를 주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욥32:8).
1. 엘리후의 등장
욥과 세 친구의 대회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젊은 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도중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까지 듣고만 있다가 그들의 대화가 끝난 뒤 끼어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후라는 젊은이 이야기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젊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나이든 분들의 대화를 듣기만 한 것은 그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엘리후는 그렇게 수동적인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세 분이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줄곧 기다렸습니다”(11)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꾹 참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꾹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세’ 이는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상담자는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나아가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도록 유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진정한 치료는 속에 있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끄집어내는 데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 진정한 슬기
엘리후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껏 언급해왔던 욥과 세 친구의 문제와 맥이 같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정죄하려는 친구들의 태도와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고 하느님의 책임으로 모든 고난의 원인을 몰아가는 욥의 태도 말입니다. 엘리후는 그 모든 것의 원인을 ‘슬기’의 결핍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슬기가 나이와 상관없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8)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곧 슬기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게 뭘까요? 자신의 무죄와 결백만을 주장하는 욥과 친구를 정죄하려는 세 친구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본문에서 엘리후는 자신이 그 슬기를 지닌 사람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욥과 세 친구를 대하는 자세 속에서 그 슬기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 편을 들 생각도 없고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다”(21)고 했습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놀라운 평상심이 눈에 띕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겸손함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 그게 슬기의 기본 아닐까요?
. 읽은 말씀: 욥기32:1-22
. 내 용: 엘리후의 등장
1. 욥과 세 친구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엘리후가 말 할 기회를 갖고 등장함.
2. 욥을 정죄하려는 세 친구의 태도와,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하느님의 책임을 언급한 욥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함.
. 묵상 말씀: “사람에게 슬기를 주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욥32:8).
1. 엘리후의 등장
욥과 세 친구의 대회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젊은 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도중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까지 듣고만 있다가 그들의 대화가 끝난 뒤 끼어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후라는 젊은이 이야기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젊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나이든 분들의 대화를 듣기만 한 것은 그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엘리후는 그렇게 수동적인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세 분이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줄곧 기다렸습니다”(11)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꾹 참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꾹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세’ 이는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상담자는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나아가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도록 유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진정한 치료는 속에 있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끄집어내는 데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 진정한 슬기
엘리후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껏 언급해왔던 욥과 세 친구의 문제와 맥이 같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정죄하려는 친구들의 태도와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고 하느님의 책임으로 모든 고난의 원인을 몰아가는 욥의 태도 말입니다. 엘리후는 그 모든 것의 원인을 ‘슬기’의 결핍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슬기가 나이와 상관없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8)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곧 슬기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게 뭘까요? 자신의 무죄와 결백만을 주장하는 욥과 친구를 정죄하려는 세 친구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본문에서 엘리후는 자신이 그 슬기를 지닌 사람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욥과 세 친구를 대하는 자세 속에서 그 슬기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 편을 들 생각도 없고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다”(21)고 했습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놀라운 평상심이 눈에 띕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겸손함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 그게 슬기의 기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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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하고 경솔한 태도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사랑의 전제조건도 겸손함이 있었고,(며칠전 말씀중에 읽은것 같네요..)
슬기의 기본에도 겸손함이 있음을 보면서
겸손과 겸허함을 간구하고 다짐하며
새로운 한 주를 힘차게 시작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