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20 빌닷의 세 번째 충고
2013.04.20 06:47
||0||013042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25:1-6
. 내 용: 빌닷의 세 번째 충고
1. 하느님의 위대하신 권능과 위엄에 대하여 언급.(1-3)
2. 인간의 악함과 비천함을 언급.(4-6)
. 묵상 말씀: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욥25:6).
1. 변화된 빌닷의 발언
오늘 본문에서 빌닷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차와 2차 발언에서 일관되게 주장하였던 인과응보론적 태도는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에 비해 허물 많은 인간의 비천함을 대비시키며 욥이 주장했던 무죄와 결백함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토록 확신에 넘치던 독기어린 충고가 사라진 것일까요? 아마도 친구들 간의 충고와 답변이 오가는 과정에서 인과응보론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욥의 기세에 더 이상 언급을 회피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 대신 등장한 빌닷의 충고도 만만치 압ㅎ습니다. 그동안 욥이 줄기차게 주장한 자신의 결백과 무죄함에 대한 치밀하게 준비된 공격적인 언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2. 의도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된 빌닷의 언사는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는 한 편의 설교와 같습니다. 어디서든 설교문으로 인용이 가능한 아주 소중한 그야말로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소중한 말씀을 들으면서고 감동이 오질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 말씀을 전하는 빌닷의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빌닷은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의 무죄함과 결백을 주장하는 욥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말씀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말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전하는 이의 태도와 동기인 듯싶습니다. 예수님을 돌로 치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바로 전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기적을 바랬고 그래서 좀 더 나은 정치적, 경제적 환경을 원했으나 힘없이 붙잡힌 예수의 모습에 태도가 돌변한 것이지요. 우리의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 속에 믿음의 삶을 견인해 내는 그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동기의 순수함과 반듯한 의도가 참된 믿음과 삶을 만듭니다.
. 읽은 말씀: 욥기25:1-6
. 내 용: 빌닷의 세 번째 충고
1. 하느님의 위대하신 권능과 위엄에 대하여 언급.(1-3)
2. 인간의 악함과 비천함을 언급.(4-6)
. 묵상 말씀: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욥25:6).
1. 변화된 빌닷의 발언
오늘 본문에서 빌닷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차와 2차 발언에서 일관되게 주장하였던 인과응보론적 태도는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에 비해 허물 많은 인간의 비천함을 대비시키며 욥이 주장했던 무죄와 결백함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토록 확신에 넘치던 독기어린 충고가 사라진 것일까요? 아마도 친구들 간의 충고와 답변이 오가는 과정에서 인과응보론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욥의 기세에 더 이상 언급을 회피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 대신 등장한 빌닷의 충고도 만만치 압ㅎ습니다. 그동안 욥이 줄기차게 주장한 자신의 결백과 무죄함에 대한 치밀하게 준비된 공격적인 언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2. 의도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된 빌닷의 언사는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는 한 편의 설교와 같습니다. 어디서든 설교문으로 인용이 가능한 아주 소중한 그야말로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소중한 말씀을 들으면서고 감동이 오질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 말씀을 전하는 빌닷의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빌닷은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의 무죄함과 결백을 주장하는 욥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말씀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말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전하는 이의 태도와 동기인 듯싶습니다. 예수님을 돌로 치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바로 전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기적을 바랬고 그래서 좀 더 나은 정치적, 경제적 환경을 원했으나 힘없이 붙잡힌 예수의 모습에 태도가 돌변한 것이지요. 우리의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 속에 믿음의 삶을 견인해 내는 그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동기의 순수함과 반듯한 의도가 참된 믿음과 삶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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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감동시킬 참된 믿음과 삶을 간구하는 기도로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주말을 맞이 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