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03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람
2014.01.03 07:57
||0||0140103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2:1-10
. 내 용: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람
1. 주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고백.
2. 그의 자손과 정직한 사람이 받을 복과 이를 보고 화를 내는 악인의 말로.
. 묵상 말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112:1).
1. 복
복(福)은 거져 주어진 것입니다. 값없이 거져 주어진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가르치는 복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복하고는 그 개념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복은 우리가 흔히 칠복(七福)으로 알고 있는 그런 내용으로 물리적인 소유의 영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좋은 것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는 복은 그러한 소유와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개념으로 인간의 의지와 태도로 그 복의 영역과 개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로 복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로 그 복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팔복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그야말로 없어지는 것들이죠.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하느님 보다 하느님이 주신 것들에 매달리는 모습이죠. 본질과 차원의 차이입니다.
2.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복과 세상의 복의 차이는 본질과 차원의 차이가 맞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의 삶 속에 나타난 모습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인은 그런 사람을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치는 사람’(4)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재화들이 있다면, 물질과 명예, 권세일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사회적 재화들의 혜택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음과 살아감에 있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강도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전제는 같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인생의 어둠 속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주님을 향한 마음 말입니다. 사회적 재화들이 사라지고 그 혜택에서 박탈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7). 왜요? ‘주님을 믿기 때문’(7)이라고 했습니다. 어둠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어둠을 주관하시는 어둠 너머 계신 주님을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은 인생의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빛이 나게 마련입니다.
. 읽은 말씀: 시편112:1-10
. 내 용: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람
1. 주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고백.
2. 그의 자손과 정직한 사람이 받을 복과 이를 보고 화를 내는 악인의 말로.
. 묵상 말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112:1).
1. 복
복(福)은 거져 주어진 것입니다. 값없이 거져 주어진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가르치는 복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복하고는 그 개념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복은 우리가 흔히 칠복(七福)으로 알고 있는 그런 내용으로 물리적인 소유의 영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좋은 것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는 복은 그러한 소유와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개념으로 인간의 의지와 태도로 그 복의 영역과 개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로 복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로 그 복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팔복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그야말로 없어지는 것들이죠.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하느님 보다 하느님이 주신 것들에 매달리는 모습이죠. 본질과 차원의 차이입니다.
2.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복과 세상의 복의 차이는 본질과 차원의 차이가 맞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의 삶 속에 나타난 모습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인은 그런 사람을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치는 사람’(4)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재화들이 있다면, 물질과 명예, 권세일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사회적 재화들의 혜택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음과 살아감에 있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강도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전제는 같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인생의 어둠 속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주님을 향한 마음 말입니다. 사회적 재화들이 사라지고 그 혜택에서 박탈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7). 왜요? ‘주님을 믿기 때문’(7)이라고 했습니다. 어둠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어둠을 주관하시는 어둠 너머 계신 주님을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은 인생의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빛이 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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