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08 엘리바스의 이어지는 충고
2013.04.08 06:36
||0||013040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15:17-35
. 내 용: 엘리바스의 이어지는 충고
1. 욥의 불경건과 교만을 지적한 뒤, 악인의 최후에 대하여 전함.
2. 욥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느님을 대항하고 우습게 여긴 탓이라고 규정함.
3. 그런 악인의 최후는 파멸임을 전함.
. 묵상 말씀: “내가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욥15:17).
1.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
교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원리나 원칙에만 얽매여 있는 융통성이 없는 태도나 그러한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과학적인 해명이나 현실에 대한 실천과 검증 없이 신앙이나 신조에 따라 세계의 사상(事象)을 설명하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자신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오늘 본문, 엘리바스에게서 그런 교조주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 앞에서 일장 설교를 하는 그런 경직되고 무지한 모습 말입니다. “내가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욥15:17).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욥에게 그의 설교 같은 조언이 들어올 리 만무입니다. 엘리바스에게 있어 그건 욥의 문제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함으로 의무를 감당했다는 안도감이 엘리바스에겐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엘리바스의 모습에서 안식일날 병을 고쳤다고 버럭 화를 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인간에 대한 애정
예수께서 그렇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율법이고 경건이고 모두 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소용없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교조주의에 빠진 이들은 그게 생략되어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열정 보다는 자신의 의(義)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슬쩍 차용한 게 바로 하느님이고 율법이고 말씀입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교훈은 다 팽개쳐 버리고 문자만 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런 글을 써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 인간에 대한 애정, 이는 신앙의 전제이면서 결론이기도 합니다. 엘리바스가 그걸 알았더라면 어떤 행동을 보여줬을까요? 이렇게 긴 말 대신 동정의 눈물 한 방울이 욥에겐 더 필요했을 텐데 말입니다.
. 읽은 말씀: 욥기15:17-35
. 내 용: 엘리바스의 이어지는 충고
1. 욥의 불경건과 교만을 지적한 뒤, 악인의 최후에 대하여 전함.
2. 욥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느님을 대항하고 우습게 여긴 탓이라고 규정함.
3. 그런 악인의 최후는 파멸임을 전함.
. 묵상 말씀: “내가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욥15:17).
1.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
교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원리나 원칙에만 얽매여 있는 융통성이 없는 태도나 그러한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과학적인 해명이나 현실에 대한 실천과 검증 없이 신앙이나 신조에 따라 세계의 사상(事象)을 설명하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자신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오늘 본문, 엘리바스에게서 그런 교조주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 앞에서 일장 설교를 하는 그런 경직되고 무지한 모습 말입니다. “내가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욥15:17).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욥에게 그의 설교 같은 조언이 들어올 리 만무입니다. 엘리바스에게 있어 그건 욥의 문제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함으로 의무를 감당했다는 안도감이 엘리바스에겐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엘리바스의 모습에서 안식일날 병을 고쳤다고 버럭 화를 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인간에 대한 애정
예수께서 그렇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율법이고 경건이고 모두 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소용없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교조주의에 빠진 이들은 그게 생략되어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열정 보다는 자신의 의(義)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슬쩍 차용한 게 바로 하느님이고 율법이고 말씀입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교훈은 다 팽개쳐 버리고 문자만 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런 글을 써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 인간에 대한 애정, 이는 신앙의 전제이면서 결론이기도 합니다. 엘리바스가 그걸 알았더라면 어떤 행동을 보여줬을까요? 이렇게 긴 말 대신 동정의 눈물 한 방울이 욥에겐 더 필요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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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2:13)
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실천하는 믿음생활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