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617 주님은 살아계신다!
2013.06.17 06:01
||0||013061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8:43-50
. 내 용: 주님은 살아계신다!
1. 살아계신 하느님을 몸소 체험한 다윗의 고백.
2. 반역하는 백성들에게서 구원해 주시고, 원수를 갚아주시고, 포악한 자들에게서 건져주시고, 뭇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심.
. 묵상 말씀: “주님은 살아계신다.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높여라”(시18:46).
1. 살아계신 주님
다윗의 고백을 보면 그에게 있어 신앙은 ‘살아있는 생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의 삶과 괴리된 게 아니라 함께 굴러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주시고 구원자가 되어주시고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으로 하느님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시16“8)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삶 속에서 함께 묻어나는 그런 하느님은 정말 다윗에게 있어서 살아계신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하느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념적으로, 관념적으로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도깨비 방망이처럼, 필요할 때 차용하여 사용하고 용도가 폐기 되면 다시 잊어버리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존재의 깊음과 교감 따위는 없고 단지 심리적인 안위만을 주는 부적같이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 삶의 목적이시고 믿음과 찬양의 대상이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이시니까요.
2. 영적인 교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리의 환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승리의 환희가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의 삶이 역동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삶의 역동적이었다는 것은 편안치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자리를 잡고 왕권을 확립하기까지는 주변이 늘 어수선했습니다. 편안치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반역하는 백성들은 다윗이 왕위를 반대했던 자들로,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사울 왕의 추종자들로 여겨집니다. 사울 사후에도 다윗의 왕위 계승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안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기쁨이 넘치고 환호성이 넘칩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맘은 편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권이 확립된 후 다윗의 삶에 변화가 옵니다. 전쟁터에 나간 신하의 아내를 범하고 간접 살인까지 저지를 만큼 타락하기도 했습니다. 육신적인 안위와 영적인 깊이의 상관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육신적인 아누이와 영적인 깊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둘 다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분명한 것은 우선순위는 있다는 것입니다.
# 이주현 목사입니다. D.Min(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6월 17일(월) 미국 웨슬리 신학대학교(워싱톤DC)로 출국, 7월 4일 귀국합니다. 하여 약 20여일 동안 새벽 묵상을 올리지 못합니다.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 읽은 말씀: 시편18:43-50
. 내 용: 주님은 살아계신다!
1. 살아계신 하느님을 몸소 체험한 다윗의 고백.
2. 반역하는 백성들에게서 구원해 주시고, 원수를 갚아주시고, 포악한 자들에게서 건져주시고, 뭇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심.
. 묵상 말씀: “주님은 살아계신다.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높여라”(시18:46).
1. 살아계신 주님
다윗의 고백을 보면 그에게 있어 신앙은 ‘살아있는 생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의 삶과 괴리된 게 아니라 함께 굴러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주시고 구원자가 되어주시고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으로 하느님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시16“8)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삶 속에서 함께 묻어나는 그런 하느님은 정말 다윗에게 있어서 살아계신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하느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념적으로, 관념적으로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도깨비 방망이처럼, 필요할 때 차용하여 사용하고 용도가 폐기 되면 다시 잊어버리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존재의 깊음과 교감 따위는 없고 단지 심리적인 안위만을 주는 부적같이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 삶의 목적이시고 믿음과 찬양의 대상이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이시니까요.
2. 영적인 교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리의 환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승리의 환희가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의 삶이 역동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삶의 역동적이었다는 것은 편안치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자리를 잡고 왕권을 확립하기까지는 주변이 늘 어수선했습니다. 편안치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반역하는 백성들은 다윗이 왕위를 반대했던 자들로,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사울 왕의 추종자들로 여겨집니다. 사울 사후에도 다윗의 왕위 계승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안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기쁨이 넘치고 환호성이 넘칩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맘은 편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권이 확립된 후 다윗의 삶에 변화가 옵니다. 전쟁터에 나간 신하의 아내를 범하고 간접 살인까지 저지를 만큼 타락하기도 했습니다. 육신적인 안위와 영적인 깊이의 상관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육신적인 아누이와 영적인 깊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둘 다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분명한 것은 우선순위는 있다는 것입니다.
# 이주현 목사입니다. D.Min(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6월 17일(월) 미국 웨슬리 신학대학교(워싱톤DC)로 출국, 7월 4일 귀국합니다. 하여 약 20여일 동안 새벽 묵상을 올리지 못합니다.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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