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04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
2013.10.04 10:18
||0||013100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67:1-7
. 내 용: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
1.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를 나타냄.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는 것과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
. 묵상 말씀: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시67:3).
1. 왜 사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인생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산다는 것은 길을 제대로 찾고 사는 그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순서를 왜곡시켜 “어떻게”에만 집중합니다. “왜”가 생략된 “어떻게”는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는 배와 같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그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삶이 왜곡되거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복의 이유와 목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복은 모두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것과 그 것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복과 은혜를 주신 이유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내신 이유와 목적을 아는 것이 되는 것이죠.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잘살려고 발버둥치는 삶, 그 속에서 혼란과 왜곡이 생기는 것이지요.
2.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얻은 이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자는 그 답변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2).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복과 은혜를 주신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뜻과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주님의 뜻과 구원을 알게 하시기 위해 복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복과 은혜에 대하여 우리의 위상을 올려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달콤한 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을 당하거나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복 받았다거나 은혜 받았다고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뜻과 구원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곧 복과 은혜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주님의 뜻과 은혜를 모른다면, 그 어떤 부요와 평안도 그에게 은혜와 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복과 은혜를 알게 된 이는 주님을 경외하며(7) 주님을 찬송하게 됩니다(3). 삶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지요.
. 읽은 말씀: 시편67:1-7
. 내 용: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
1.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를 나타냄.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는 것과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
. 묵상 말씀: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시67:3).
1. 왜 사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인생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산다는 것은 길을 제대로 찾고 사는 그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순서를 왜곡시켜 “어떻게”에만 집중합니다. “왜”가 생략된 “어떻게”는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는 배와 같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그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삶이 왜곡되거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복의 이유와 목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복은 모두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것과 그 것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복과 은혜를 주신 이유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내신 이유와 목적을 아는 것이 되는 것이죠.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잘살려고 발버둥치는 삶, 그 속에서 혼란과 왜곡이 생기는 것이지요.
2.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얻은 이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자는 그 답변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2).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복과 은혜를 주신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뜻과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주님의 뜻과 구원을 알게 하시기 위해 복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복과 은혜에 대하여 우리의 위상을 올려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달콤한 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을 당하거나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복 받았다거나 은혜 받았다고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뜻과 구원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곧 복과 은혜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주님의 뜻과 은혜를 모른다면, 그 어떤 부요와 평안도 그에게 은혜와 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복과 은혜를 알게 된 이는 주님을 경외하며(7) 주님을 찬송하게 됩니다(3). 삶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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