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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1110 하느님의 기대

2014.11.10 21:49

이주현 조회 수:155

14111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이사야5:1-7

. 내 용: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린 유다

1.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기대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대를 저버림.

2.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을 포도원과 포도나무 비유로 선포함.

 

. 묵상 말씀: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5:7).

1. 피투성 존재(被投性 存在, Geworfenheit):

나는 누구인가”. 이는 인간이라면 한 번 쯤 성찰하고 답을 고민해봐야 할 질문이라고 봅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줄 아는 존재로 하느님은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그런 성찰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은 추론이 가능할 터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라는 존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창조주의 깊으신 섭리 안에서 지음 받은 존재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피투성 존재라고 했습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인생을 토기장이 손 안에 있는 진흙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18:6). 결국 라는 존재의 주인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주님과 나의 관계이지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 이는 우리 인간이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야 할 관계입니다.

2. 그런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그러한 창조주와의 관계는 곧 나의 존재 이유를 추론하게 됩니다. 신앙인의 삶과 비신앙인과의 삶과 구별이 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하느님, 창조주에게서 찾는 데서 그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을 초월하여 믿음을 위해 순교의 자리까지 들어가는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까지도 하는, 그런 삶의 영역이 생기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느님의 기대를 성찰하고 판단하는 일이지요. 나를 향한 하느님의 기대와 요청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렇게 하느님의 기대를 판단하고 성취할 수 있는 영적 유산이 참으로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기대를 무참하게 무너뜨렸습니다. 튼실하고 먹음직한 포도열매를 위해 그토록 애를 썼지만 먹지 못하는 들포도를 맺자, 화가 난 하느님이 자신의 포도원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주어진 삶을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