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매원감리교회

161003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2016.10.03 11:24

이주현목사 조회 수:10

161003 새벽 묵상

. 묵상 말씀: 에스겔16:44-59

. 내 용: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1. 유다의 죄악을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범죄 집단이었던 사마리아와 소돔과 비교.

2. 유다에 대한 회복 예언

 

. 묵상 말씀: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네가 저지른 모든 악한 일을 용서받은 다음에, 네가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놀라고, 그리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도 열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16:63).

1. 사마리아와 소돔의 죄보다 더한 유다의 죄

성서에서 사마리아와 소돔은 가장 대표적인 범좌 집단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분단된 이스라엘의 열 지파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었던 곳으로 북 이스라엘 왕국의 타락한 왕들과 그 역사를 상징합니다. 소돔은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등과 같은 사해 남부 서안에 위치한 도시로 음행과 부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모라와 함께 유황불 심판(19)으로 받은 곳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가르쳐 사마리아의 동생으로 소돔의 언니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은 부류이며 오히려 그들보다 더 타락했음을 본문에서 언급(47)하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과 시온성 예루살렘으로서는 뼈아픈 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적 가운데 눈에 띄는 지적이 하나 있습니다.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49). 음행과 우상으로 반역한 것만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행과 우상을 나무라시고 심판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로 인하여 드러나는 패역함 때문인 듯싶습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을 이처럼 두들겨 패듯 몰아가시며 심판하시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러면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목적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네가 저지른 모든 악한 일을 용서받은 다음에, 네가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놀라고, 그리고 부끄러워 다시는 입도 열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63). 첫째로는 용서와 회복입니다. 언니와 동생으로 언급했던 사마리아와 소돔도 예루살렘에 앞서 회복시키겠다(53)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심판과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의 백성이나 이방인 관계없이 용서와 회복임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죄를 지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판과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자시는 죄를 쳐다보기도 싫고 수치스럽게 생각되도록 사용하신 방식이 바로 심판과 징계라는 것이지요. 죄의 댓가가 얼마나 끔찍한 지를 제사 의식을 통해 늘 봐왔던 터지만, 그들은 죄악을 반복했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해야할지, 연약함이라고 하야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 231023 삼손의 파혼(삿14:1-20_ file 이주현 2023.10.23 10
138 231003 기드온의 불편한 행적들(삿8:18-35) file 이주현 2023.10.03 10
137 230905 여호수아 마지막 권고와 죽음(수24:1-33) file 이주현 2023.09.05 10
136 230824 되돌아간 동쪽 지파(수22:1-9) file 이주현 2023.08.24 10
135 221228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민19:1-22) file 이주현 2022.12.28 10
134 221110 하느님 나라(눅13:18-21) file 오목사 2022.11.10 10
133 220928 제사 음식 먹는 규례(레22:1-16) file 이주현 2022.09.28 10
132 220926 사형에 해당하는 죄(레20:1-27) file 이주현 2022.09.27 10
131 220914 계속되는 정결의식(레16:23-34) file 이주현 2022.09.14 10
130 231206 사무엘을 주님께 바친 한나(삼상1:19-28) file 이주현 2023.12.06 10
129 220124 왜 무서워 하느냐?(막 4:35-41) file 오목사 2022.01.26 10
128 211108 달란트 비유(마25:14-30) file 오목사 2021.11.08 10
127 210226 천부장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느님의 은혜 file 오목사 2021.02.26 10
126 210112 진정한 자유인 file 이주현 2021.01.12 10
125 170621 니느웨의 멸망의 필연성 [1] 이주현목사 2017.06.27 10
124 170607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 [1] 이주현목사 2017.06.09 10
123 170201 육체를 가진 자들과 함께 사는 신 이주현목사 2017.02.01 10
» 161003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이주현목사 2016.10.03 10
121 240508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다윗의 조가(삼하1:17-27) file 이주현 2024.05.08 9
120 240306 친구와 적을 만든 다윗의 승리(삼상17:55-18:16) file 이주현 2024.03.0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