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28 다윗의 분노
2011.11.28 06:33
||0||0111128 새벽묵상
. 읽은 말씀: 사무엘상17:12-30
. 내 용: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게 됨
1.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쟁터를 방문하게 됨
2. 그 곳에서 골리앗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낌
. 묵상말씀: “다윗이 대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보지도 못합니까?’”(삼상17:30)
1. 한 성질 하는 다윗
여덟 형제 중 막내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양치기 소년 다윗, 그에게도 한 성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분부대로 양치기를 하던 다윗은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전쟁터에 나간 세 형(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음식을 싸들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게 됩니다. 40일 째 골리앗을 내세워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주눅들게 하고 있던 골리앗을 보는 순간 다윗은 열을 받습니다. “저 할례를 받지도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17:26) 하느님에 대한 두터운 신앙이 느껴지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다윗을 보고 그의 형, 엘리압은 동생 다윗을 업신여기며, 욕 한마디를 날립니다.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삼상17:28) 그러자 다윗이 대듭니다.(삼상17:30)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2. 거룩한 분노
성서에서 ‘분노’는 자제하고 극복해야 할 왜곡된 성품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분노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 이는 자제하고 극복해야 할 분노가 아닙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신앙심에 열정과 역사성이 더해진 성과물입니다. 하여 이를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정화(마21:2-13; 막11:15-17; 눅19:45-48)기사에서 보여준 예수의 분노가 바로 그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와 노예 해방을 이끈 링컨의 분노가 바로 그런 분노입니다. 분명한 악이나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암묵적인 동조일 것입니다. 문득,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은 신뢰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골리앗이라는 악을 대하면서 다윗에게는 거룩한 분노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지하며 나무라는 형에게도 한 마디 날린 것 아닐까요? 우리 삶 속에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다면, 분명한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한 성질로 나타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 읽은 말씀: 사무엘상17:12-30
. 내 용: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게 됨
1.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쟁터를 방문하게 됨
2. 그 곳에서 골리앗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낌
. 묵상말씀: “다윗이 대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보지도 못합니까?’”(삼상17:30)
1. 한 성질 하는 다윗
여덟 형제 중 막내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양치기 소년 다윗, 그에게도 한 성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분부대로 양치기를 하던 다윗은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전쟁터에 나간 세 형(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음식을 싸들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게 됩니다. 40일 째 골리앗을 내세워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주눅들게 하고 있던 골리앗을 보는 순간 다윗은 열을 받습니다. “저 할례를 받지도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17:26) 하느님에 대한 두터운 신앙이 느껴지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다윗을 보고 그의 형, 엘리압은 동생 다윗을 업신여기며, 욕 한마디를 날립니다.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삼상17:28) 그러자 다윗이 대듭니다.(삼상17:30)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2. 거룩한 분노
성서에서 ‘분노’는 자제하고 극복해야 할 왜곡된 성품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분노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 이는 자제하고 극복해야 할 분노가 아닙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신앙심에 열정과 역사성이 더해진 성과물입니다. 하여 이를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정화(마21:2-13; 막11:15-17; 눅19:45-48)기사에서 보여준 예수의 분노가 바로 그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와 노예 해방을 이끈 링컨의 분노가 바로 그런 분노입니다. 분명한 악이나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암묵적인 동조일 것입니다. 문득,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은 신뢰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골리앗이라는 악을 대하면서 다윗에게는 거룩한 분노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지하며 나무라는 형에게도 한 마디 날린 것 아닐까요? 우리 삶 속에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다면, 분명한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한 성질로 나타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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