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6 죽임당하신 어린양(계5:1-14)
2021.04.26 06:56
210426 새벽 묵상
.읽은 말씀: 요한계시록 5장 1~14절
.내용: 죽임당하신 어린 양
1. 요한의 심정
2. 예배로의 초대
.묵상 말씀:
이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자격이 있는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들 가운데서 하나가 나에게 “울지 마십시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가 이 일곱 봉인을 떼고, 이 두루마리를 펼 수 있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4~5).
1. 요한의 심정
요한은,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이 보좌 앞에 모두 모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환상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에 둘러싸인 채 만물이 하느님의 보좌 앞에 모여 예배드리는 장엄한 장면에 몰입해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봅니다. 두루마리는 성경을 의미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는 봉인되어 있었습니다(1). 이에 요한은 슬피 울었습니다(4).
보좌가 아무리 휘황찬란하고 장로들과 피조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자신이 거기에 포함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절망만 느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보좌를 보고, 경이에 찬 노래를 듣고, 만물이 그분을 찬양하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의 예배가 아닌 ‘저들의 예배’라는 사실이 느껴진다면, 나는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울고 말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거룩한 분이라고 한들, 자신이 그 거룩함에서 제외된다면, 내가 하느님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면, 하느님이 거룩한 분임을 아는 것은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악으로 가득하고, 나 또한 허물투성이임을 아는데, 거룩하신 하느님이 존재하시지만, 그분의 말씀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 우리 또한 슬피 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인정합니다.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천사도 봉인을 스스로 뗄 수 없음을 압니다(3). 어떠한 피조물의 노력으로도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우리가 스스로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압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갈 때마다, 그분 앞에 설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염치없음, 무능력함이며 동시에 그분께 나아가고 싶은 간절함뿐입니다.
2. 예배로의 초대
두루마리는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묵시가 봉해졌고, 아무도 그것을 뗄 수 없다고 한탄했습니다(사29:11~12). 하지만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두루마리에 담긴 현재의 의미를 밝히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 왔음을 선포하심으로 봉인을 떼셨습니다(눅4:16~21).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고 하느님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셔서, 복음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사실로 관계로 이해됩니다.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는 순간 요한은 울음을 멈춥니다. 영광스러운 예배 안에 요한 자신도 포함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두루마리를 친히 열어주셔서 나를 하느님께로 데려다주시는 분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기에, 요한은 예배에 참여합니다. 우리 또한 예배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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