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매원감리교회

120710 하느님의 신실하심

2012.07.10 06:20

이주현 조회 수:711

||0||012071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열왕기하13:1-13
. 내     용: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아스의 행적
1. 북 이스라엘을 28년 동안 다스렸던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행적을 기록
2. 여로보암의 죄, 즉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를 지음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사 시리아 왕의 억압을 받음. 여호아하스가 하느님께 기도함으로 시리아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죄악의 길을 감.  
3. 그 아들 여호아스도 16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악을 행함.

. 묵상 말씀: "여호아하스가 주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니, 주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왕하13:4).
1. 기도의 신비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는 것은 우상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마리아에다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든 데서 시작된 셈입니다. 여호아하스 역시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금송아지 숭배를 했습니다. 그로인해 그의 선조들이 당했던 것처럼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여호아하스는 하느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시리아로부터 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또 죄의 길로 들어서는 아호아하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맛 본 여호아하스의 행동은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여호아하스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예상 못하셨을까요?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게 기도의 능력이요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서면 잊을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비 못해 안달이 난 부모의 심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하느님의 신실하심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배은망덕한 모습으로 나타난 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신실하시다는 게 바로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그 신실하심에 힘입어 우리는 언제고 하느님 앞에 담대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신실하심은 연약한 인간, 그래서 반역을 일삼는 인간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느님은 그런 신실하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위에 나타난 여호아하스의 배은망덕한 모습,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의 왕위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왕위를 지켜주기 위해 하느님은 곧 반역할 여호아하스의 기도도 들어주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떻게 하든 피할 길을 주시고 새로운 은총을 준비해주시는 그런 모습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후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바알을 제거하는 일을 그렇게 광범위하게 펼쳤던 예후, 하느님은 그를 위해 4대의 왕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은 어떻게 하든 지켜질 것입니다. 하느님이 해주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