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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312 마음의 고요와 평안

2014.03.12 06:10

이주현 조회 수:321

||0||014031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31:1-3
. 내     용: 마음의 평온함
1. 교만한 마음,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분에 넘치는 일을 이루려고 하지 않겠다는 고백.
2. 그렇게 마음을 먹은 시인의 마음이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과 같은 모습.

. 묵상 말씀: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시131:2)
1. 젖뗀 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평화는 무엇일까요? 과연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존재할까요? 그런 질문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만큼 사람들은 평화에 대하여 갈급해 있는 반면, 그런 평화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핵무기를 등 뒤에 지고 다니며 평화를 말하니 그걸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자기 방식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니 그런 평화는 허구, 기만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진정한 평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2). 그렇습니다. 이게 진정한 평화입니다. 그 어디에도 휩쓸림 없고 동요됨이 없습니다. 마치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2) 말입니다. 젖을 먹는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물어야 합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늘 보채고 늘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젖뗀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함께 있는 것 하나로 만족합니다.      
2. 분에 넘치는 일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왜, 그런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느님 품에 거하면서 우리는 그 품의 따스함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실, 그 하느님이 존재하시고 나와 동행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로 우리 삶에 너무나 큰 의미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교만한 마음과 오만한 길’입니다. 하느님은 입술과 혀에만 존재하지 자신의 마음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에 매달립니다. 자신의 위치나 한계, 역량에 맞추어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늘 탐욕이 더질 않습니다. 늘 불만과 원망이 입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기쁨과 고요 대신 낙심과 절망의 회오리가 휘몰아칠 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주어진 은혜에 만족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의 삶 자체가 분에 넘치는 삶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삽니다. 그런 사람의 삶은 삶과 죽음, 성공도 실패도 다 하나입니다. 그러니 죽음과 실패에서도 자유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