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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828 산 사람, 죽은 사람, 태어나지 않은 사람

2014.08.28 05:46

이주현 조회 수:182

||0||014082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전도서4:1-6
. 내     용: 산 사람, 죽은 사람, 태어나지 않은 사람
1. 세상에서 일어나는 억압과 폭력을 보며,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낫다.
2.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는 것 보다 낫다.

. 묵상 말씀: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전4:6).
1. 험한 세상
고통과 환난이 있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환기시켜주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숨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중요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전도서 기자는 다르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복되다’(3)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 무슨 역설인가요? 바로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습과 왜곡된 인성 때문입니다. ‘억압과 폭력으로 눈물을 흘려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1)는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온갖 못된 일’(3)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모습을 안 보는 게 낫다는 뜻이죠. 그만큼 세상이 험하고 불합리하다는 뜻입니다.
2. 경쟁심
그렇게 험한 세상의 모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요? 본문은 그것을 “경쟁심”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쟁심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게 하는 동기부여를 해 줍니다. 그래서 성취감을 맛보게 합니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본능적인 욕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종족보전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욕구가 왜곡되어 지나칠 때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 욕구가 변질되고 왜곡된 모습은 바로 타인을 다스리려는 욕구입니다. 성서에서 ‘세상적’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 욕구로 채워진 세상에서 경쟁심은 미덕이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불합리하고 왜곡된 모습들이 보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런 노력과 수고가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4)과 같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지 말고, 적게 가지고 편안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문제는 가치의 전환입니다. 수고와 노력이 지향하는 ‘성공’대신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로 편안함을 누리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