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20 지혜도 헛되다
2014.08.20 06:39
||0||014082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전도서1:12-18
. 내 용: 지혜도 헛되다
1. 사람들이 구하는 지혜의 헛됨을 전도자 자신의 경험에 비춰 고백.
2. 지혜가 많을수록 번뇌도 많고, 아는 것만큼 걱정도 많아짐.
. 묵상 말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전1:18).
1. 경험과 분별력
전도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자신이 구했던 지혜의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잠언에서 가르치는 지혜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잠언서의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기술’인 반면, 오늘 전도자가 언급하는 지혜는 번뇌와 걱정을 안겨주는 세상적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그런 지혜를 언급하며, 지혜의 헛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한 그 지혜는 ‘인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전도자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없다’(16)고 했고, ‘세상의 이치를 명확하게 구별하려고 시도’(17)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한 지혜는 인간의 경험과 사물과 이치를 구별함으로 얻어지는 지식인 셈입니다. 전도자는 그런 시도로 얻어진 지혜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을 셀 수 없다’(15)는 것으로 그 한계를 짚어주고 있습니다.
2. 한계가 주는 유익함
그렇습니다. 인간의 경험이라는 것, 그리고 사물과 이치를 구별하는 지식이라는 것, 그런 세상적인 지식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경험이 한계가 있듯이 말입니다. 결국 전도자가 깨달은 것은 분명합니다.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18)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혜와 지식, 거기에는 지혜와 지식이 주는 유익함도 있지만, 그 반대급부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치 은총과 죄라는 율법이 주는 양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주님의 은총이 담긴 율법은 죄를 양산하게 되었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구속사역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주는 그 한계를 통해 상대적인 지혜와 지식이 아닌 절대적인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전도자가 말하고자 의도, 그 지점이 그런 것 아닐까요? 그것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그것은 분명 한계가 주는 유익일 터입니다.
. 읽은 말씀: 전도서1:12-18
. 내 용: 지혜도 헛되다
1. 사람들이 구하는 지혜의 헛됨을 전도자 자신의 경험에 비춰 고백.
2. 지혜가 많을수록 번뇌도 많고, 아는 것만큼 걱정도 많아짐.
. 묵상 말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전1:18).
1. 경험과 분별력
전도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자신이 구했던 지혜의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잠언에서 가르치는 지혜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잠언서의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기술’인 반면, 오늘 전도자가 언급하는 지혜는 번뇌와 걱정을 안겨주는 세상적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그런 지혜를 언급하며, 지혜의 헛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한 그 지혜는 ‘인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전도자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없다’(16)고 했고, ‘세상의 이치를 명확하게 구별하려고 시도’(17)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한 지혜는 인간의 경험과 사물과 이치를 구별함으로 얻어지는 지식인 셈입니다. 전도자는 그런 시도로 얻어진 지혜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을 셀 수 없다’(15)는 것으로 그 한계를 짚어주고 있습니다.
2. 한계가 주는 유익함
그렇습니다. 인간의 경험이라는 것, 그리고 사물과 이치를 구별하는 지식이라는 것, 그런 세상적인 지식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경험이 한계가 있듯이 말입니다. 결국 전도자가 깨달은 것은 분명합니다.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18)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혜와 지식, 거기에는 지혜와 지식이 주는 유익함도 있지만, 그 반대급부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치 은총과 죄라는 율법이 주는 양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주님의 은총이 담긴 율법은 죄를 양산하게 되었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구속사역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주는 그 한계를 통해 상대적인 지혜와 지식이 아닌 절대적인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전도자가 말하고자 의도, 그 지점이 그런 것 아닐까요? 그것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그것은 분명 한계가 주는 유익일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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