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14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2014.08.14 06:31
||0||014081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잠언30:15-20
. 내 용: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1. 거머리의 보채는 두 딸과 부모를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의 말로.
2. 기이한 일 셋과 이해할 수 없는 일 넷.
. 묵상 말씀: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잠30:18).
1.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
부모에 대한 효도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만고의 진리요 인간의 도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가족이 가족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孝는 百行之本”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부모에 대한 효도는 세상 모든 일의 근본’이라는 뜻이지요. 즉, 효도 없이 백 가지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또 해도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부모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17)이라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왜,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할까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근본이 없거나, 근본이 모자란 탓이지요. 근본은 바로 인간성입니다. 인간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품성이지요. 결국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 그 부모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모자라거나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부모의 잘못일까요, 자녀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은총에서 제외된 저주일까요? 참, 알다가 모를 일입니다.
2.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오늘 본문에서 잠언 기자는 이해할 수없는 일이라며 그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 바다 위로 지나간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19)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허접한 이야기를 왜 지혜자가 남겼느냐는 말입니다. 더구나 ‘남녀가 함께 한 자리’라는 음탕한 비유까지 들면서 말입니다. 사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네 가지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이 책에 기록으로 남게 된 이유입니다. 혹시, 사실과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분명 독수리나 뱀, 배가 지나간 자리는 존재합니다. 단지 그 자국이 우리 시야에 포착되지 않을 뿐이지요. 남녀가 함께 있었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자취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시야에 포착이 안 될 뿐이지요. 인식과 사실의 세계는 분명한 간격이 존재합니다. 그 인식과 사실(진리)세계를 메워주는 매개가 바로 ‘믿음’입니다. 사실과 인식이라는 간극을 메워줌으로 우리의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넓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 읽은 말씀: 잠언30:15-20
. 내 용: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1. 거머리의 보채는 두 딸과 부모를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의 말로.
2. 기이한 일 셋과 이해할 수 없는 일 넷.
. 묵상 말씀: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잠30:18).
1.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
부모에 대한 효도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만고의 진리요 인간의 도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가족이 가족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孝는 百行之本”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부모에 대한 효도는 세상 모든 일의 근본’이라는 뜻이지요. 즉, 효도 없이 백 가지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또 해도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부모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17)이라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왜,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할까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근본이 없거나, 근본이 모자란 탓이지요. 근본은 바로 인간성입니다. 인간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품성이지요. 결국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 그 부모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모자라거나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부모의 잘못일까요, 자녀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은총에서 제외된 저주일까요? 참, 알다가 모를 일입니다.
2.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오늘 본문에서 잠언 기자는 이해할 수없는 일이라며 그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 바다 위로 지나간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19)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허접한 이야기를 왜 지혜자가 남겼느냐는 말입니다. 더구나 ‘남녀가 함께 한 자리’라는 음탕한 비유까지 들면서 말입니다. 사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네 가지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이 책에 기록으로 남게 된 이유입니다. 혹시, 사실과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분명 독수리나 뱀, 배가 지나간 자리는 존재합니다. 단지 그 자국이 우리 시야에 포착되지 않을 뿐이지요. 남녀가 함께 있었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자취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시야에 포착이 안 될 뿐이지요. 인식과 사실의 세계는 분명한 간격이 존재합니다. 그 인식과 사실(진리)세계를 메워주는 매개가 바로 ‘믿음’입니다. 사실과 인식이라는 간극을 메워줌으로 우리의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넓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58 | 210407 용납해서는 안될 것(계2:18-29) | 이주현 | 2021.04.08 | 28 |
757 | 210118 남편과 아내들에게 | 이주현 | 2021.01.18 | 28 |
756 | 201228 인내와 맹세에 대하여 | 이주현 | 2020.12.29 | 28 |
755 | 2101104 하느님과 바른 관계 | 이주현 | 2021.01.04 | 28 |
754 | 201202 부질없는 세상에서 사는 법 | 이주현 | 2020.12.02 | 28 |
753 | 201005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 | 이주현 | 2020.10.05 | 28 |
752 | 200629 믿음과 선한 양심 | 이주현 | 2020.06.29 | 28 |
751 | 200608 바울의 위로와 중보기도 | 이주현 | 2020.06.08 | 28 |
750 | 200602 복음을 대하는 태도 | 이주현 | 2020.06.04 | 28 |
749 | 170630 더러운 도성, 예루살렘 [1] | 이주현목사 | 2017.06.30 | 28 |
748 | 170524 하느님이 지켜 보신다 [1] | 이주현목사 | 2017.05.24 | 28 |
747 | 170102 하느님의 거룩한 집념 | 이주현목사 | 2017.01.02 | 28 |
746 | 161122 너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 | 이주현목사 | 2016.11.22 | 28 |
745 | 160926 불에 타버린 포도나무 신세 | 이주현목사 | 2016.09.26 | 28 |
744 | 230125 하느님이 정하신 절기와 제사Ⅱ(민29:1-40) | 이주현 | 2023.01.25 | 27 |
743 | 221221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17:1-13) | 이주현 | 2022.12.21 | 27 |
742 | 220526 제단 성막울타리 등불 규례(출27:1-21) | 이주현 | 2022.05.26 | 27 |
741 | 220114 이집트로 되돌아가는 모세(출4:18-31) | 이주현 | 2022.01.14 | 27 |
740 | 211125 예수님께서 잡히시다(마26:47-56) | 오목사 | 2021.11.25 | 27 |
739 | 211101 영적 민감함을 회복하라(마24:29-35) | 오목사 | 2021.11.01 |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