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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1020 사랑의 절대성

2014.10.20 06:34

이주현 조회 수:158

||0||014102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아가4:1-15
. 내     용: 사랑의 절대성
1. 혼인 예식을 위해 곱게 단장한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노래.
2. 술람미 여인의 신체 부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보며 흠잡을 데 없음을 노래함.

. 묵상 말씀: “아름답기만 한 그대, 나의 사랑,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구나”(아4:7).
1. 사랑의 절대성
달콤하기만 사랑이야기를 글로 나타낸다는 게 참 멋쩍어 보입니다. 이건 글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지요.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미스터리입니다. 논리와 합리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냥 좋은 것이죠. 마음이 그러하니 눈에 뵈는 게 다 좋은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자’로 언급된 솔로몬은 신부의 신체 부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같은 눈동자와 길르앗 비탈을 내려오는 염소떼 같은 머리채’(1), 그리고 ‘털을 깎으려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은 이’(2)와 ‘붉은 실 같은 입술과 입’(3) 그리고 ‘반으로 쪼개놓은 석류 같은 볼’(3), 그리고 ‘다윗의 망대와 같은 목’(4), 그리고 ‘나리꽃 밭에서 풀을 뜯는 한 쌍 사슴과 쌍둥이 노루 같은 가슴’(5)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7)고 했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게 아니죠? 있지만 안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2. 지극한 관심
그러한 솔로몬의 사랑이야기가 구체적인 노래로 아름답게 묘사될 수 있는 것은 신부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결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반대어는 무관심인 셈이죠. 미움도 관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무관심보다는 더 사랑에 가까운 모습일 수 도 있습니다.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아름다운 노래로 나타나는 것을 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관심, 그것은 인간 구원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그게 바로 성서에 나타난 구원 드라마인 셈이죠. 그 구원 드라마는 하느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성육신(incarnation) 사건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를 기원전과 후로 나눈 대 역사인 셈이죠. 그리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역사를 통해 이 땅에 ‘복음’과 ‘교회’라는 선물을 내려주셨습니다. 결국, 교회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관심이요, 그 증거인 셈입니다. 결실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