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27 강한믿음, 자식들의 피난처
2014.05.27 06:37
||0||014052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잠언14:26-35
. 내 용: 자식들의 피난처
1. 강한 믿음은 자식들에게 피난처가 된다.
2.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며, 의로운 사람은 죽음이 닥쳐도 피할 길이 있다.
. 묵상 말씀: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잠14:26).
1. 자식들의 피난처
자식들의 피난처는 어디까지나 부모의 품입니다. 부모의 품만큼 따뜻하고 안전한 곳은 없을 터입니다. 부모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 그런 것만은 아니죠.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한한 신뢰, 그게 곧 진정한 피난처의 모습 아닌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부모만큼은 나를 믿어줄 것이다’라는 믿음, 이것만큼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늘 부족함과 허물만 크게 보이는 자녀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준다는 것은 그것은 신뢰라는 영역이 아니라 ‘사랑의 영역’입니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정해 주는 태도’이지요. 그런 자세를 자신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주님은 나를 의인 취급을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을 믿는 게 바로 ‘강한 믿음’(26)의 본질입니다. 그 강한 믿음이 자녀들에게 피난처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2. 의로운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도 있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아마도 하느님이 세상을 공평하게 다스린다 함은 누구도 그 죽음을 거부 할 수 없다는 원리 때문일 터입니다. 한평생 살면서 다양한 삶을 살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공평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의로운 사람은 죽음이 닥쳐도 피할 길이 있다”(32)고 했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극복한다는 것이지요. 그 일반적인 의미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란 무지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거, 제대로 알고(깨닫고) 잘 준비만 하면 아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단계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시116:15)고 가르쳤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그 죽음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지요.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그 본질을 깨달았기에 죽음이 두렵질 않은 겁니다. 그러니 죽음이 닥쳐와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죽음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는 것이지요.
. 읽은 말씀: 잠언14:26-35
. 내 용: 자식들의 피난처
1. 강한 믿음은 자식들에게 피난처가 된다.
2.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며, 의로운 사람은 죽음이 닥쳐도 피할 길이 있다.
. 묵상 말씀: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잠14:26).
1. 자식들의 피난처
자식들의 피난처는 어디까지나 부모의 품입니다. 부모의 품만큼 따뜻하고 안전한 곳은 없을 터입니다. 부모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 그런 것만은 아니죠.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한한 신뢰, 그게 곧 진정한 피난처의 모습 아닌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부모만큼은 나를 믿어줄 것이다’라는 믿음, 이것만큼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늘 부족함과 허물만 크게 보이는 자녀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준다는 것은 그것은 신뢰라는 영역이 아니라 ‘사랑의 영역’입니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정해 주는 태도’이지요. 그런 자세를 자신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주님은 나를 의인 취급을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을 믿는 게 바로 ‘강한 믿음’(26)의 본질입니다. 그 강한 믿음이 자녀들에게 피난처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2. 의로운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도 있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아마도 하느님이 세상을 공평하게 다스린다 함은 누구도 그 죽음을 거부 할 수 없다는 원리 때문일 터입니다. 한평생 살면서 다양한 삶을 살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공평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의로운 사람은 죽음이 닥쳐도 피할 길이 있다”(32)고 했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극복한다는 것이지요. 그 일반적인 의미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란 무지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거, 제대로 알고(깨닫고) 잘 준비만 하면 아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단계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시116:15)고 가르쳤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그 죽음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지요.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그 본질을 깨달았기에 죽음이 두렵질 않은 겁니다. 그러니 죽음이 닥쳐와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죽음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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