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29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2014.01.29 07:18
||0||0140129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8:19-29
. 내 용: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1. 집 짓는 이가 버린 돌을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신 주님의 기이한 일을 즐거워 함.
2. 그 주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높이 기림.
. 묵상 말씀: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118:22).
1. 우리의 눈에 기인한 일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해주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 시인의 고백은 “우리의 눈에 기이한 일”(23)에 대한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을 주님께서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란 무엇인가요? 집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돌이 아닌가요? 가장 강하고 보기 좋고 반듯한 돌 말입니다. 천년만년 집을 지탱할 가장 좋은 돌, 그 돌을 집 모퉁이 머릿돌로 사용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돌을 우리가 버린 돌로 사용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미가 떠오릅니다. 먼저, 사람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기에 필요없거나 자격 미달의 돌이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주님께서 그 돌을 모퉁이 머릿돌로 사용하신 겁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필요 없어보여 버린 돌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돌을 가치 있는 돌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이 세상에 기이한 일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차분하고 사려 깊은 맘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기이한 일 천지일 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인한 일들을 보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때문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부르지만,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말입니다.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 분을 주님으로 고백은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는 그렇질 못했습니다. 말 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내 속에 “나”가 주인이 되어 나의 삶을 주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되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신경질만 날 뿐입니다. 성에 차지 않으니 절망과 한숨이 끊이질 않습니다. 티끌만도 못한 존재의 가벼움과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당연히 생기는 일들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만족해야 할텐데, 하느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기대하시고 기뻐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주님은 하느님, 나의 하느님’(27,28)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신앙인의 당연한 모습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 읽은 말씀: 시편118:19-29
. 내 용: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1. 집 짓는 이가 버린 돌을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신 주님의 기이한 일을 즐거워 함.
2. 그 주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높이 기림.
. 묵상 말씀: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118:22).
1. 우리의 눈에 기인한 일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해주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 시인의 고백은 “우리의 눈에 기이한 일”(23)에 대한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을 주님께서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란 무엇인가요? 집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돌이 아닌가요? 가장 강하고 보기 좋고 반듯한 돌 말입니다. 천년만년 집을 지탱할 가장 좋은 돌, 그 돌을 집 모퉁이 머릿돌로 사용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돌을 우리가 버린 돌로 사용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미가 떠오릅니다. 먼저, 사람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기에 필요없거나 자격 미달의 돌이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주님께서 그 돌을 모퉁이 머릿돌로 사용하신 겁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필요 없어보여 버린 돌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돌을 가치 있는 돌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이 세상에 기이한 일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차분하고 사려 깊은 맘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기이한 일 천지일 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인한 일들을 보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때문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부르지만,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말입니다.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 분을 주님으로 고백은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는 그렇질 못했습니다. 말 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내 속에 “나”가 주인이 되어 나의 삶을 주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되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신경질만 날 뿐입니다. 성에 차지 않으니 절망과 한숨이 끊이질 않습니다. 티끌만도 못한 존재의 가벼움과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당연히 생기는 일들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만족해야 할텐데, 하느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기대하시고 기뻐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주님은 하느님, 나의 하느님’(27,28)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신앙인의 당연한 모습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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