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08 예루살렘에 임한 무자비한 심판
2016.09.08 20:39
16090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에스겔9:1-11
. 내 용: 예루살렘에 임한 심판
1. 환상 가운데 성읍을 심판할 사람들이 제단 곁으로 다가옴.
2. 이마에 표시가 되어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함.
. 묵상 말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대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아라”(겔9:4).
1. 무자비한 심판
하느님은 자비와 긍휼히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애3:21-22)라고 고백하며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느님은 무자비한 심판을 내리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읍 가운데 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이라’(5)고 했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라’(5)고도 했습니다. 이에 에스겔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였으나’(8) ‘그들의 죄악이 너무 크고 불법으로 차 있어 그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9-10)고 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롭고 사랑으로(kind and thoughful) 하신다’(시145:17)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간절함이 그 심판의 무자비함 속에 담겨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역겨운 일만 하며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포로 신세로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
2.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
그러한 무자비한 심판은 그래서 아파하시면서 때리시는 사랑의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멸망을 향해 줄달음치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달래는 모습도 있지만, 몽둥이로 달려가는 다리를 치는 매서운 모습도 있는 법이지요. 진짜 부모는 그러고도 남습니다. 그렇게 무자비한 심판 속에서 이뤄지는 살육가운데서 비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사자들로부터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시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찬 사람들이 표시한 표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손을 대지 말라”(6)고 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불법을 행하고 죄악 가운데 머물렀던 예루살렘 백성들 가운데서 그 일로 인하여 슬퍼하고 신음하던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영을 쫓아 살던 사람들인 셈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똑같이 죄를 짓고 살면 그 안에서 죄를 짓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슬퍼한다는 것은 그들이 쫓는 영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쫓는 영이 다르니 가치도 다르고 가치가 다르니 삶의 원리도 다릅니다. 그러니 사는 게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환난 날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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