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30 다시 시작된 예배
2012.11.30 06:45
||0||012113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역대지하29:18-36
. 내 용: 성전의 재 봉헌
1. 히스기야 왕이 시작한 성전 정화작업을 마친 후 백성들이 연합하여 성전 봉헌을 하는 의식을 치름.
2. 수십 년 동안 그쳤던 제사를 다시 복원하며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드리는 찬양과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감사제로 이어짐.
3. 이렇게 복원된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갑작스럽게 되었음에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잘 진행되었고, 히스기야 왕과 온 백성이 기뻐함.
. 묵상 말씀: :“이렇게 하여, 주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대하29:35).
1. 다시 시작된 예배(worship)
아하스에 의해 성전이 폐쇄된 이후 오랜만에 성전 정화 작업을 마치고 다시 봉헌하는 모습입니다. 그 봉헌은 속죄제와 경배, 헌신의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를 두고 ‘다시 시작된 예배’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죄를 대속하는 제사와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 하느님에 대한 헌신, 즉 경외심을 갖고 하느님을 대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총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경외심을 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지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한 성찰과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것, 그게 하느님을 대하는 첫 번째 관문인 셈입니다. 그 다음엔 그 분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찬양과 경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회복된 심령과 채워진 기쁨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함께 함
이러한 예배의 모습 속에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함께 연합하여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온 회중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28)고 했고 “온 회중이 다 엎드려 경배하였다”(29)고 했습니다. 몇 사람이 나서서 대표로 드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다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드리는 공동체성이 생략되어서는 안 됩니다. 경우에 따라 나 홀로 그 분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예배의 공동체적 성격을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는 성서에서 가르치는 예배의 본질은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러ᅟᅩᇂ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시133:1).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하려는 공동체적 사고, 그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고 나누는 게 성서에서 가르치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 읽은 말씀: 역대지하29:18-36
. 내 용: 성전의 재 봉헌
1. 히스기야 왕이 시작한 성전 정화작업을 마친 후 백성들이 연합하여 성전 봉헌을 하는 의식을 치름.
2. 수십 년 동안 그쳤던 제사를 다시 복원하며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드리는 찬양과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감사제로 이어짐.
3. 이렇게 복원된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갑작스럽게 되었음에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잘 진행되었고, 히스기야 왕과 온 백성이 기뻐함.
. 묵상 말씀: :“이렇게 하여, 주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대하29:35).
1. 다시 시작된 예배(worship)
아하스에 의해 성전이 폐쇄된 이후 오랜만에 성전 정화 작업을 마치고 다시 봉헌하는 모습입니다. 그 봉헌은 속죄제와 경배, 헌신의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를 두고 ‘다시 시작된 예배’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죄를 대속하는 제사와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 하느님에 대한 헌신, 즉 경외심을 갖고 하느님을 대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총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경외심을 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지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한 성찰과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것, 그게 하느님을 대하는 첫 번째 관문인 셈입니다. 그 다음엔 그 분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찬양과 경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회복된 심령과 채워진 기쁨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함께 함
이러한 예배의 모습 속에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함께 연합하여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온 회중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28)고 했고 “온 회중이 다 엎드려 경배하였다”(29)고 했습니다. 몇 사람이 나서서 대표로 드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다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드리는 공동체성이 생략되어서는 안 됩니다. 경우에 따라 나 홀로 그 분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예배의 공동체적 성격을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는 성서에서 가르치는 예배의 본질은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러ᅟᅩᇂ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시133:1).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하려는 공동체적 사고, 그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고 나누는 게 성서에서 가르치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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