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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21019 동족 간의 전쟁을 막으신 하느님

2012.10.19 16:03

이주현 조회 수:650

||0||0121019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역대지하11:1-17
. 내     용: 르호보암의 전쟁 준비와 북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남하, 그리고 르호보암의 번영
1. 르호보암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 중 정병 18만 명을 소집하여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스마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중지시킴.
2. 북 이스라엘에 있던 제사장들이 여로보암의 행위에 반발, 예루살렘으로 일단의 백성들과 함께 내려옴.
3. 78명의 처첩과 88명의 아들, 딸을 거느렸던 르호보암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의 아들인 아비야를 가장 아꼈고, 그를 후계자로 세움.

. 묵상 말씀: "너희 동족과 싸우지 말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거라"(대하11:4).
1. 싸움을 막으신 하느님
북 이스라엘 10개 지파의 반역은 르호보암의 오판이 한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미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대하10:15) 오늘 보문에서 르호보암은 반역을 일으켜 집권에 성공한 여로보암을 치기 위해 18만 명의 정병을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일전을 치를 준비를 마친 르호보암에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내가 그리한 것이니'(4) 싸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머리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나 행위에 대하여 성서적 어법은 "하느님이 그렇게 하셨다"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차원인 듯싶습니다만, 인간의 생사여탈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주권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도한 우리의 영역이 아닐 터입니다. 아무튼 성서 기자의 의도와 하느님의 섭리는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를 대신해 왔음을 전제로 할 때, 어떤 경우에서든 동족이나 민족 간의 전쟁은 합리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신앙의 정통성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물리적인 규모로 본다면 10지파를 안고 있는 북 이스라엘에 정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차지하는 이스라엘의 정서를 생각할 때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을 안고 있는 남 유다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편에 더 무게 중심이 실리는 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오늘 본문은 그 실마리를 풀어줄 내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남 유다에게 내 준 북 이스라엘은 제사장을 제 멋대로 세워서 숫염소와 송아지 우상을 섬기에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출입을 막기 위한 여로보암의 인위적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있었던 여로보암은 성전에 대한 개념이나 신앙적인 태도와 무관한 삶을 살았던 듯싶습니다. 문제는 북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던 제사장들입니다. 자신들의 할 일을 빼앗기고 하느님 신앙과는 다른 길로 가는 여로보암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요? 그들은 남 유다로 향했고, 일단의 백성들도 그를 따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통성이 남 유다로 기우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