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02 솔로몬 성전 터
2012.10.02 06:47
||0||012100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역대지하2:17-3:14
1.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이스라엘에 살던 이방인들 15만 삼천육백 명을 동원함.
2. 모리아 산,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성전 터로 삼아 성전 건축을 시작함.
3.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성전을 지음.
. 묵상 말씀: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주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대하3:1).
1. 헌신과 용서의 상징
무슨 건물을 짓든지 그 터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지을 때도 산 기운을 보고 물 자리를 봅니다. 집의 방향을 정해 양기와 음기를 적절하게 조절합니다. 하물며 주님의 집, 성전을 짓는데 오죽했을까요? 그 성전의 터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모리아 산입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올랐던 곳입니다. 100세 때 얻은 소중한 아들을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 바로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헌신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솔로몬의 선친 다윗 왕이 번제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인구조사를 함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샀지만, 번제를 통해 회개와 용서를 체험했던 곳입니다. 다윗은 그 곳을 '이스라엘의 번제단으로, 하느님의 성전으로' 이미 지정한 바 있습니다.(대상22:1) 하느님을 향한 헌신과 인간을 향한 용서가 이뤄지는 곳, 그 곳이 성전 터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 예배와 교제가 이뤄지는 교회도 바로 그런 곳 아닐까요?
2. 보석과 금으로 화려하게
성전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편에 남아있는 솔로몬시대의 자취, '통곡의 벽'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그 성전에 대한 애잔함을 통곡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성전을 짓는데 있어 금과 보석이 동원되었고 화려하게 지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전건축에 들어간 못까지 금으로 만들었음을 나타내고 있고(9) 성전의 안팎과 다락방까지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이를 사치스럽고 화려하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의 헌신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금이나 보석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과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란 그렇게 마음과 정성으로 나타나는가 봅니다. 진실이 담긴 믿음은 삶속에서 '정성'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 정성은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인격과 성품에 맞춰가는 자양분입니다.
. 읽은 말씀: 역대지하2:17-3:14
1.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이스라엘에 살던 이방인들 15만 삼천육백 명을 동원함.
2. 모리아 산,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성전 터로 삼아 성전 건축을 시작함.
3.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성전을 지음.
. 묵상 말씀: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주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대하3:1).
1. 헌신과 용서의 상징
무슨 건물을 짓든지 그 터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지을 때도 산 기운을 보고 물 자리를 봅니다. 집의 방향을 정해 양기와 음기를 적절하게 조절합니다. 하물며 주님의 집, 성전을 짓는데 오죽했을까요? 그 성전의 터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모리아 산입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올랐던 곳입니다. 100세 때 얻은 소중한 아들을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 바로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헌신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솔로몬의 선친 다윗 왕이 번제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인구조사를 함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샀지만, 번제를 통해 회개와 용서를 체험했던 곳입니다. 다윗은 그 곳을 '이스라엘의 번제단으로, 하느님의 성전으로' 이미 지정한 바 있습니다.(대상22:1) 하느님을 향한 헌신과 인간을 향한 용서가 이뤄지는 곳, 그 곳이 성전 터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 예배와 교제가 이뤄지는 교회도 바로 그런 곳 아닐까요?
2. 보석과 금으로 화려하게
성전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편에 남아있는 솔로몬시대의 자취, '통곡의 벽'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그 성전에 대한 애잔함을 통곡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성전을 짓는데 있어 금과 보석이 동원되었고 화려하게 지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전건축에 들어간 못까지 금으로 만들었음을 나타내고 있고(9) 성전의 안팎과 다락방까지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이를 사치스럽고 화려하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의 헌신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금이나 보석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과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란 그렇게 마음과 정성으로 나타나는가 봅니다. 진실이 담긴 믿음은 삶속에서 '정성'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 정성은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인격과 성품에 맞춰가는 자양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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