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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321 엘리바스의 간증

2013.03.21 06:16

이주현 조회 수:746

||0||013032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5:17-27
. 내     용: 엘리바스의 간증
1. 하느님을 찾고 사정을 하느님께 털어놓는 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하여 언급.
2. 모든 고난 가운데서 구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언급함.

. 묵상 말씀: “하느님께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래도 복된 사람이다”(욥5:17).
1. 고난 보다 큰 희망
여전히 인과응보론에 입각한 엘리바스의 조언과 충고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하느님에 대한 엘리바스의 고백(욥5:17)은 성서 전반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고백과 일치하며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적절한 조언이 될 수 있었을 터입니다. “주님께서 꾸짖으시고 주님의 법으로 친히 가르치시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시94:12).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꾸짖으시니, 마치 귀여워하는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와 같으시다”(잠3:12).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과 고통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보다 더 큰 희망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고난 보다 더 큰 희망을 갖는 다면 우리는 고난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다 속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생존의 투쟁과 경쟁은 여전하지만 그것을 덮어버린 넉넉한 바다를 보며 우리가 평화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고난 앞에서 그보다 더 큰 희망을 본다는 것, 징계를 받으면서 복을 발견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2. 그 희망의 근원
그 희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분명히 존재하는 데 눈에 보아는 것도 아니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인식의 작용일 뿐입니다. 인식의 변화, 그것은 곧 시각과 관점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만들어 내는 공작소와 같은 작용을 합니다. 그 작용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도 하고 비천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 시각과 관점의 변화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요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앞에 선다는 것은 그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시입니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들은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불신 속에서 문제는 크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문제가 크게 보이니 탄식과 원망이 나오게 마련이지요. 기도는 주어진 문제보다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크게 보이게 합니다. 그러니 희망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그 하느님에 대한 엘리바스의 장황한 소개는 적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