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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50722 하느님의 신실하심

2015.07.22 07:06

이주현목사 조회 수:37

15072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예레미야33:14-26

. 내 용: 주님의 약속

1.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대한 복된 약속.

2. 그 약속을 한 하느님의 신실하심.

 

. 묵상 말씀: “나를 섬기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렘33:21).

1. 구원의 내용

포로귀환을 염두에 둔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타나게 될 메시야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 왕권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의 회복은 한 번 멸망당한 경험을 한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회복의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다윗의 혈통과 한 민족의 범주 안에 머물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의 포로 귀환에 대한 예언은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하는’(15) 하느님의 구속 사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구원의 내용도 단순히 무너진 성전과 도성이 다시 세워지는 것으로 그치질 않습니다. ‘공평과 정의를 실현’(15)하는 것으로 구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내용, 그것이 공평과 정의라는 점이 이채롭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임하는 곳에 공평과 정의가 회복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다스림이 미치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과연 공평하고 정의로운가요? 공평과 정의는 주어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만들어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2. 하느님의 신실하심

이스라엘과 유다의 약속은 포로로 잡혀간 이들에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비록 포로라는 신분이었지만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희망과 소망 가운데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 믿음은 하느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의 구원과 그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기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신실하심을 오늘 본문에서는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낮에 대한 하느님의 약정과 밤에 대한 하느님의 약정을 인간이 깨뜨릴 수 없듯이’(20) 하느님의 약속을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회복 약속에 대해서 왜,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까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받는 인간의 반응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신실하심과 그 신실하심에 기반을 둔 약속은 은혜이며 축복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무의미한 이념과 사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