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매원감리교회

150716 희망의 조건

2015.07.16 15:06

이주현목사 조회 수:40

150716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예레미야31:15-22

. 내 용: 하느님의 위로

1. 라헬이 당한 고통을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에 대비시키며 희망을 선포함.

2. 주님을 떠난 다음에 뉘우치며 참회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 하느님.

 

. 묵상 말씀: “그를 책망할 때마다 더욱 생각나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렘31:20).

1. 라헬의 탄식과 기쁨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은 받고 있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는 라헬의 탄식을 본문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중에 요셉과 베냐민이라는 귀한 아들을 낳았지만, 그 전에 라헬이 당한 슬픔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터입니다. 더구나 자신 대신에 야곱과 결혼을 한 언니 레아가 아이를 낳는 동안 라헬은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몸종을 통해 아이를 낳게 하는 일까지 벌였지만 라헬은 주님의 은혜로 두 아들(요셉과 베냐민)을 낳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라헬의 슬픔과 탄식을,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아픔과 대비를 시키고 있습니다. 슬픔에 잠겨있던 라헬이 결국에는 기쁨을 찾았듯이 이스라엘도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 앞날에 희망이 있다”(17)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은 ‘희망’입니다.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믿기에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절망은 곧 불신이라는 범죄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희망을 갖는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2. 희망의 조건

그러나 하느님이 주시는 희망을 자신의 삶 속에서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몫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희망은 예외가 없지요. 악한 왕의 통치와 부화뇌동하는 백성들의 범죄로 타락한 이스라엘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자비와 은총을 삶의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순전히 백성들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희망을 만드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떠난 다음에 곧 뉘우쳤습니다. 잘못을 깨달은 다음에 가슴을 치며 뉘우쳤습니다”(19)라고 말입니다. ‘책망할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20) 당신의 백성들이 참회하며 뉘우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희망’입니다. 희망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동시에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요. ‘너희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고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고 축복의 기회로 볼 줄 아는 열린 눈이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