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매원감리교회

141027 완전한 사랑을 위하여

2014.10.27 06:37

이주현 조회 수:141

||0||014102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아가서8:1-14
. 내     용: 사랑의 완전을 위하여
1. 사랑하는 임을 향하여 사랑의 완전을 위하여 자신의 소망을 고백하는 술람미 여인.
2. 뜻밖의 사랑을 얻은 술람미 여인이 고백하는 사랑의 정의.

. 묵상 말씀: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아8:6).
1. 완전한 사랑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는 감정의 모습인 사랑에 완전함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요? 수시로 변하고 그 변하는 감정에 따라 움직여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입니다. 대답은 ‘아닙니다’일겁니다. 단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뿐이지요. 사랑의 구체적인 목표로 존재할 뿐, 인간의 사살 속에는 완전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그 사랑의 완전함을 향한 네 가지 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누이 같은 사랑입니다. “아, 임께서 어머니 젖을 함께 빨던 나의 오라버니라면”(1)이라는 고백을 통해 그런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인 간의 사랑, 이성 간의 사랑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사랑할 만하니까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조건이 사라지거나 변하면 그 사랑도 사라지거나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누이 간의 사랑은 그렇질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장 좋은 것을 대접하고(2), 둘 만의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4)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고상한 사랑이라도 둘 만의 접촉과 애무 없이는 사랑의 완전함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입니다.
2. 사랑은 타오르는 거센 불길
이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오누이라는 차원을 염원하는 술람미 여인의 속셈은 뻔합니다. 그 사랑을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소망 때문이지요. 언젠가는 변할 지도 모르고 또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이 지닌 감정의 제약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농부가 결실을 위해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드리는 과정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씨앗은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창조의 영역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요. 그 감정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씨앗과 같은 것이죠.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그 사랑이라는 씨앗이 심겨지면, 그 다음에는 곡식을 가꾸는 농부의 손길과 같은 보살핌이 필요한 법이지요. ‘왼팔로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안아주는’(3) 접촉과 세심한 배려 속에 사랑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법이지요. 그 불길은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6)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6)이라고 했습니다.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해봐야 인생을 사는 맛이 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런 사랑 받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