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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1025 춤추는 사랑

2014.10.25 06:02

이주현 조회 수:121

||0||0141025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아가7:1-13
. 내     용: 춤추는 사랑
1. 술람미 여인이 춤을 추는 광경을 보면서 신부의 친구들과 신랑이 찬양하는 모습.
2. 이에 대하여 술람미 여인이 신랑에 대하여 고백하는 사랑의 노래.

. 묵상 말씀: “나의 사랑을 드리겠어요”(아7:12).
1. 사랑의 역동성
지나는 길에서 예쁜 꽃을 보면 사람들은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쁘니까요. 다시 한 번 되돌아와 보던지 아니면, 가장 이기적인 모습이긴 합니다만, 꺾어가기라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관심이죠. 그런 관심이 깊어지면 반드시 행동을 유발시키게 마련입니다. 그게 바로 사랑의 역동성이죠. 오늘 본문은 술람미 여인이 춤을 추자 친구들과 신랑이 이에 대한 반응으로 찬양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전에는 신랑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주로 내면에 머물렀습니다. 신랑에 대한 사랑 고백이 가슴과 머리, 입술에 머물렀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 사랑이 깊어지면 그 사랑은 이내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로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살이 진실하고 진정성을 지녔다면 반드시 행동으로 보이게 마련이지요. 헌신과 봉사와 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춤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요?  가슴과 머리, 입술에 머무는 사랑은 그래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사랑의 온전성
우리는 사랑의 원형을 성서에서 가르치는 하느님 사랑에서 찾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말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시는 ‘성육신’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2:7).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의 사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2:8). 결국, 그 성육신 사건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죠. 다 주는 것, 이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으로 마무리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사랑의 온전성’을 찾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람을 느끼게 마련이지요. 모든 것을 줘도 부족함을, 결핍을 느끼는 그 이상한 감정, 그게 바로 사랑의 온전성 아닌가요? 오늘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신랑에게 그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춤으로 사랑의 역동성을 보여준 술람미 여인은 이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겠다는 고백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