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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903 생명을 속량하시는 주님

2013.09.03 06:21

이주현 조회 수:364

||0||0130903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49:1-20
. 내     용: 생명을 속량하시는 주님
1. 세상의 돈으로는 생명을 속량할 수는 없다. 그 생명을 속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시다.
2.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죽음에서 속량하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 묵상 말씀: “ ”하느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거져 주실 것이다“(시49:15).
1. 스올의 세력
오늘 본문은 죽음에 대하여 적나라하고 비교적 많은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9)이라는 점과 ‘예외가 없다’는 점(10)을 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모은 사람도 많은 지식을 지닌 자도 권력을 지닌 자도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권세를 지녀도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숙연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 그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와 본질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의지할 분을 찾습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주님을 알게 되는 축복과 은총의 통로요 수단인 셈입니다. ‘몸의 가시’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했던 바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죽음 앞에서 조차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며 추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처럼 스올(음부)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되는 사람들’(14)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명철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이 소중한 일입니다(1-2).
2. 속전을 지불하시는 하느님
그 스올의 세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올에서 건져내려면 그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하는 데, 하느님이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 속전은 ‘세상의 재물로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마련할 수 없다’(8)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비싼 것’(8)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값으로 매기고 죽음을 피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일컬어 “미련한 짐승”(12)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없는 재물은 미련한 짐승”(20)과 같다는 고백이 나온 것이지요. 미련한 짐승과 같은 이들은 장래에 자신에게 펼쳐질 운명에 대하여 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스올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생명의 속전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은 그 피할 곳을 찾게 마련이지요. 하느님은 물질로 계산이 불가능한 속전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입니다. 그 피 값으로 우리를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