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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830 동틀녘에 도우시는 주님

2013.08.30 07:57

이주현 조회 수:409

||0||0130830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46:1-11
. 내     용: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
1. 고라 자손의 시로,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2.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꺾고 방패를 불사르는 그 분을 하느님인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

. 묵상 말씀: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시46:10).
1. 동틀녘에 도우시는 분
오늘 분문은 앗시리아 산헤립의 침공(왕하18~19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야욕 앞에 한 줌 밖에 안 돼 보이는 유다와 예루살렘, 풍전등화와 같은 조건 속에서 히스기야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구하기 위해 성전의 황금까지 산헤립에게 갖다 바칩니다만, 그의 야욕은 꺾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히스기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과 신하들에게 베옷을 입히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하느님을 모욕하는 랍사게의 편지를 성전에 펼쳐놓고 기도’하였습니다(왕하19:16). 그러자 주의 천사가 산헤립의 군대 18만 5천 명을 죽였다고 했습니다(왕하19:35). 그러한 체험 속에서 백성들은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구원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땅과 산과 바다가 흔들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2)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고대 근동의 패자인, 앗시리아  앞에 한 줌 밖에 안 돼 보이는 유다를 도울 세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유다를 도우셨습니다. 모두가 곤히 잠들어 도움을 줄 수 없는 ‘동틀녘’에 도우신 것입니다.
2. 잠깐 손을 멈추고
그렇습니다. ‘동틀녘에 도우셨다’함은 물리적인 시간이나 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모두가 곤히 잠들어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그런 때, 또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18만 5천여 명의 군대가 진멸하는 것을 보았으니 하느님이 정말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꺾는 분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하느님이 내 삶을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고 구원하시는 그런 분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를 구하신 그 하느님이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그 하느님이라는 깨달음,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문에서 “너희는 손을 잠깐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10)고 하였습니다. 그 분이 바알이 아니고 아세라가 아니고 이스라엘을 열방 중에서 불러내신, 그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잠깐, 손을 멈추고’라고 했습니다. 손을 멈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계획들을 멈춘 다는 뜻 아닐까요? 하느님을 알기 위해 ‘잠깐, 멈출 줄 아는 여유’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