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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722 단 하나의 소원

2013.07.22 06:47

이주현 조회 수:474

||0||03072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27:1-9
. 내     용: 단 하나의 소원
1. 빛과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느님만 의지하겠다는 다윗이 단 하나만의 소원을 고백함.
2.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

. 묵상 말씀: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시27:4).
1. 단 하나의 소원?
오늘 본문은 하느님께서 빛이 되어 주시고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피난처가 되어주셨던 다윗, 그의 삶 전반에 걸쳐 하느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말씀과 뜻에 지배를 받았던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그는 단 하나만의 소원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의 치기(稚氣)로 광야에서 도망자로 지내고 한 나라의 왕으로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던 다윗입니다. 어찌 소원이 하나뿐이겠습니까? 여기서 ‘단 하나만의 소원’이라함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질과 근원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삶의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잡다한 삶의 문제들을 갖고 씨름하질 않습니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 그것 하나 붙잡고 씨름을 합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이고 유효한 방안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여러 잡다한 문제를 한꺼번에 붙잡고 있어봤자 소용없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장 본질적인 문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단 하나만의 소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느님과의 파트너십(Partnership)
다윗은 그 하나만 구하겠다고 하면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입니다. 주님의 집과 성전은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도 같은 주님일 테고, 나머지 ‘보는 것’과 ‘의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논을 하려면 봐야하고, 그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는 것과 의논한다는 것은 하나일 수 있습니다. 결국 다윗이 생각한 삶의 본질은 하느님과의 파트너십(Partnership)이었습니다. 그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면서 그와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게 바로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게 잘되면 삶의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되고, 반면 안 되면 삶의 문제가 꼬이게 되는 것이지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옷 전체가 꼬이듯이 삶의 첫 단추도 그런 것 아닐까요? 그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통해 삶의 평안을 얻고, 그분과의 소통을 통해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느님을 만났는데, 뭐 또 필요한 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