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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422 하느님의 권능과 인간의 한계

2013.04.22 06:27

이주현 조회 수:608

||0||013042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26:1-14
. 내     용: 빌닷의 세 번째 충고에 대한 답변
1. 빌닷의 충고에 대하여 ‘고맙지만,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없다’며 빌닷의 발언을 평가.(1-4)
2. 자연의 현상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을 언급(5-13)하면서 그러한 하느님의 권능은 인간의 지식으로 제한할 수 없음을 언급함(14).

. 묵상 말씀: “그분께서 꾸짖으시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흔들린다”(욥26:11).
1. 하느님의 권능
빌닷의 충고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펼치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욥의 언급은 그 문장의 화려함이나 깊이가 빌닷의 그 것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깊은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진정성과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권능을 깨닫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현상입니다. 즉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주어지는 선물인 셈입니다. 그 하느님의 권능을 깨달으면서 믿음의 세계가 열리는 셈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경외는 그렇게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인식하게 하는 고난은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롬11:33) 헤아리기 힘든 하느님의 부유하심과 권능이 나의 감탄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2. 사람의 한계
오늘 본문에서 욥이 그렇게 하느님의 권능을 힘주어 언급하는 것은 바로 전 장에 언급된 빌닷의 충고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제한하는 듯한 빌닷의 발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말하는 자는 이 세상의 사물과 사건에 대하여 함부로 규정하거나 단언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판단에 대한 정지나 유보가 삶 속에 익숙해지는 것이지요. 그러한 태도는 곧바로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하느님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나의 이해와 경험의 한계 안에 하느님을 가두려는 시도이지요. 그러한 유혹을 벗어나고 극복하는 것, 그게 바로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욥은 “우리가 그 분에게서 듣는 것도 가냘픈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14)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 그 이상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영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