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14 십일조 생활 회복
2013.02.14 06:47
||0||013021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느헤미야기12:44-47
. 내 용: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을 위한 예물
1. 성벽 재건과 봉헌식을 마친 백성들이 그 날, 관리인을 세워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 바치는 예물을 관리하도록 함.
2.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 예식과 노래하는 일과 성전 문지기 역할을 함.
. 묵상 말씀: “유다 사람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고마워서..”(느12:44).
1. 신앙의 백미(白眉)
촉한[蜀漢]에 재주가 뛰어난 다섯 형제가 살았는데, 그 중 그 가운데서 흰 눈썹을 가진 마량[馬良]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백미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지닌 신앙에도 그런 백미가 있을 터입니다. 오늘 본문, 성벽 재건을 마치고 봉헌식에 이어 맨 마지막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통해 그런 신앙의 백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예물을 드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관리할 관리인을 세우고 율법에 정한 대로 그들을 위한 예물을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른바 레위기에서 언급한 십일조 전통(레27:30)을 되살린 셈입니다. 봉헌식을 마친 바로 그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고마워서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식에 익숙한 신앙인들이 맘에 새겨둬야 할 교훈이 존재합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마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할 내용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2. 십일조 정신
엄격한 의미에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십일조에 대한 의무는 없어졌습니다. 레위기에 언급한 대로 십일조에 대한 적용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구약에서 규정한 ‘십일조’를 주장하고 강제하는 것은 분명, 오류이며 억지입니다. 그러나 그 십일조 정신과 가치는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과의 나눔 정신’입니다. 직무를 맡은 사람들에 대한 생계를 염두에 두고 출발한 십일조(레27:30)는 돌보아야 할 나그네와 과부 고아를 위한 구제의 성격으로 진화를 했습니다. 그것을 두고 예수께서도 진정한 십일조 정신으로 “정의와 자비와 신의”(마23:23)을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의 법적 책임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가치는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위한 도구로서 말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두고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과 척도로 사용하는 일도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십일조는 십의 일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1/20도 괜찮고 1/5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그 정신과 가치를 담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읽은 말씀: 느헤미야기12:44-47
. 내 용: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을 위한 예물
1. 성벽 재건과 봉헌식을 마친 백성들이 그 날, 관리인을 세워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 바치는 예물을 관리하도록 함.
2.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 예식과 노래하는 일과 성전 문지기 역할을 함.
. 묵상 말씀: “유다 사람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고마워서..”(느12:44).
1. 신앙의 백미(白眉)
촉한[蜀漢]에 재주가 뛰어난 다섯 형제가 살았는데, 그 중 그 가운데서 흰 눈썹을 가진 마량[馬良]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백미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지닌 신앙에도 그런 백미가 있을 터입니다. 오늘 본문, 성벽 재건을 마치고 봉헌식에 이어 맨 마지막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통해 그런 신앙의 백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예물을 드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관리할 관리인을 세우고 율법에 정한 대로 그들을 위한 예물을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른바 레위기에서 언급한 십일조 전통(레27:30)을 되살린 셈입니다. 봉헌식을 마친 바로 그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고마워서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식에 익숙한 신앙인들이 맘에 새겨둬야 할 교훈이 존재합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마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할 내용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2. 십일조 정신
엄격한 의미에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십일조에 대한 의무는 없어졌습니다. 레위기에 언급한 대로 십일조에 대한 적용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구약에서 규정한 ‘십일조’를 주장하고 강제하는 것은 분명, 오류이며 억지입니다. 그러나 그 십일조 정신과 가치는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과의 나눔 정신’입니다. 직무를 맡은 사람들에 대한 생계를 염두에 두고 출발한 십일조(레27:30)는 돌보아야 할 나그네와 과부 고아를 위한 구제의 성격으로 진화를 했습니다. 그것을 두고 예수께서도 진정한 십일조 정신으로 “정의와 자비와 신의”(마23:23)을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의 법적 책임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가치는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위한 도구로서 말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두고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과 척도로 사용하는 일도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십일조는 십의 일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1/20도 괜찮고 1/5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그 정신과 가치를 담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38 | 130206 언약에 서명한 백성들 | 이주현 | 2013.02.07 | 595 |
1637 | 130207 예루살렘에 재배치된 백성들 | 이주현 | 2013.02.08 | 573 |
1636 | 130208 영원히 기억될 이름들 | 이주현 | 2013.02.08 | 559 |
1635 | 130212 성벽 봉헌식 | 이주현 | 2013.02.12 | 617 |
» | 130214 십일조 생활 회복 | 이주현 | 2013.02.14 | 601 |
1633 | 130215 비교되는 두 지도자 | 이주현 | 2013.02.15 | 684 |
1632 | 130216 안식일 규례 회복 | 이주현 | 2013.02.16 | 661 |
1631 | 130218 통혼에 대한 느헤미야의 개혁 | 이주현 | 2013.02.18 | 645 |
1630 | 130219 와스디 왕비의 폐위 사건 | 이주현 | 2013.02.19 | 899 |
1629 | 130220 에스더가 왕후가 되다 | 이주현 | 2013.02.20 | 772 |
1628 | 130221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의 원수로 등장한 하만 [1] | 이주현 | 2013.02.21 | 874 |
1627 | 130223 민족을 구하기로 결심한 에스더 [1] | 이주현 | 2013.02.24 | 779 |
1626 | 130226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한 에스더 [1] | 이주현 | 2013.02.26 | 836 |
1625 | 130227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하만 [1] | 이주현 | 2013.02.27 | 1427 |
1624 | 130228 하만의 몰락 [1] | 이주현 | 2013.02.28 | 898 |
1623 | 120301 유대인을 위한 새로운 조서 | 이주현 | 2013.03.01 | 804 |
1622 | 130302 유다 백성들의 인생역전 [1] | 이주현 | 2013.03.02 | 835 |
1621 | 130304 부림절 제정 [1] | 이주현 | 2013.03.04 | 811 |
1620 | 130305 피차에 득이 된 왕과 모르드개 [1] | 이주현 | 2013.03.05 | 682 |
1619 | 130307 욥에 대한 하느님과 사탄의 평가 [1] | 이주현 | 2013.03.07 | 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