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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60929 반역한 핏덩이의 미래

2016.09.29 22:28

이주현목사 조회 수:15

160929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에스겔16:35-43

. 내 용: 반역한 핏덩이의 미래

1. 예루살렘의 음행과 우상 섬김에 대한 처절하면서도 치밀한 심판과 형벌.

2. 다시는 우상을 섬기거나 음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심판과 형벌.

 

. 묵상 말씀: “그제야 너에 대한 내 분이 풀리고, 내 질투가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서,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게 될 것이다”(16:42).

1. 그러므로 창녀야!

버려진 핏덩이를 살려주고, 돌봐주고 어엿한 처녀로 자라나 왕비처럼 큰 예루살렘. 그러나 그 버려진 핏덩이가 받은 은혜는 하느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이었습니다. “너와 언약을 맺어서,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16:8). 세상에서 온갖 찬사를 다 받고 미모를 갖췄다고 해도 하느님의 백성된 것만 할까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의 복에 비해 하느님의 복은 사실 막연합니다. 그러나 그 막연한 복을 보는 순간 세상의 복은 저절로 버려지게 됩니다. 하느님을 보고 그 분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은 무엇이 소중한 복인 줄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이 바로 그런 복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나의 자녀, 나의 사람으로 불림을 받던 예루살렘이 오늘 본문에서는 어느덧 창녀라는 호칭으로 바뀝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그렇게 가까이서 체험하고, 그의 임재를 일상처럼 경험하던 이들도 그렇게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2. 하느님의 분노

하느님이 그렇게 정말 화를 내시고 처절하게 복수를 한 후, 그 분노가 풀리고 질투가 사그라지고 하는 분일까요? 그렇다면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뭣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선하십니다.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이 그 분의 속성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상과 음행으로 반역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으로 모아서 치고”(37), “벌거벗은 몸을 보게 하고”(37), “살인죄의 벌을 내리고”(38), 그렇게 한 후에야 겨우 맘을 가라앉힌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발끈하시고 형벌을 받게 한 다음에는 다시 맘이 평온해 지는 그런 분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이 표현은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안타까운 맘에 대한 문학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운 하느님의 심정이 그렇다는 뜻이지요. 그만큼 죄를 미워하시고 하느님 대신 죄를 가까이 하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처벌이 깊고 클수록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움과 사랑의 크기도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