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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221 온 마음

2014.02.21 06:39

이주현 조회 수:318

||0||014022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145-152
. 내     용: 주님의 법과 가까운 자와 먼 자
1. 주님의 법과 거리가 가까운 자가 주님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하여 언급.
2. 주님의 법과 거리가 먼 악인의 모습을 비교.

. 묵상 말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시119:148).
1. 온 마음
주님의 법을 가까이 대하는 자의 태도는 어떤 모습인지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온 마음을 다하여 부르짖으니”(145)라고 했습니다. ‘온 마음’이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치된 마음이요, 다른 마음이 들어올 여유를 주지 않을 만큼 집중하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집중하는 태도는 다름 아닌 “갈망”(147)하는 모습일 터입니다. 그런 갈망이 있으니,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울부짖고”(147),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148)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온 마음으로 주님과 주님의 법을 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은 “영원한 증거”(152)입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 전부터 존재한 주님의 증거, 그 언약을 주시겠다는 뜻이지요. 문제는 온 마음입니다. 온 마음은 다른 여지가 없는 오직 한 길을 뜻합니다.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결기가 바로 온 마음 속에 담긴 의미가 아닐까요? 혈루병으로 12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온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잡는 그런 심정 말입니다. 이러다 안 되면 다른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이게 나의 마지막이라는 그런 절박한 심정 말입니다.
2. 주님의 법과 거리가 먼 자
이렇게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주님의 법과 거리가 먼 자들도 있음을 시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일컬어 “악을 따르는 자”(150), 곧 ‘악인’이라고 합니다. 결국 의인과 악인, 축복과 재앙은 주님의 법과 가까운 자와 먼 자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 세상에는 주님의 법을 멀리 하는 자와 가까이 하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선과 악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가 하느님이신데, 그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자칫 잘못하면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시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창조사역이라는 시각에서는 둘이 아닌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법을 따르고 사모하고 순종하려는 자세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세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