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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217 꿀보다 더 단 말씀

2014.02.17 05:42

이주현 조회 수:359

||0||014021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97~104
. 내     용: 꿀보다 더 단 주님의 법
1. 꿀보다 더 단 말씀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
2.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시인의 태도.

. 묵상 말씀: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시119:103).
1. 꿀 보다 더 단 말씀
시인은 본문에서 주의 말씀의 맛을 “꿀맛”에다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맛을 안다는 것은 먹어봤다는 뜻이요, 말씀을 먹었다는 것은 그 말씀을 지켰다는 고백일 터입니다. 시인은 그 말씀을 신뢰하고 치중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켜 행함으로 소중한 경험을 한 셈입니다. 몸속에다 그 맛을 저장해둔 셈입니다. 그 말씀의 맛을 체험하기 위해 시인이 취한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97)한다고 했습니다. 머리부터 발까지 온통 그 말씀만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온 마음’입니다. 시인의 의식 속에 다른 게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 법과 계명에 대한 시인의 절대적인 신뢰의 태도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98)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 기억 속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상황에 대처할 말씀이 준비되어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법도를 따랐다’(99)고 했습니다. 주의 법에 대한 사모와 준비가 전제되어야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법이지요. 그게 다름 아닌 순종의 메커니즘입니다.
2. 발길을 돌림
주의 말씀을 지키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나쁜 길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101)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104)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법과 맞지 않는 가치와 원리를 떠나는 것이지요. 주의 계명을 지키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그 모든 것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아픔과 고통이 수반되겠지요. 그것을 감수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과거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새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삶의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실지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를 지양하고 현실에 집중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나 미래를 위한 진전된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므로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사는 태도입니다. 과거나 현재의 의미를 미래에 투영시키며 사는 태도입니다. 과거의 추억과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미래를 위한 토대로 삼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 발길을 돌리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