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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214 고난의 유익

2014.02.14 05:38

이주현 조회 수:355

||0||014021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65-80
. 내     용: 고난의 유익
1. 주님의 법을 통한 통찰력과 지식을 구하면서, 고난의 유익을 강조하는 시인의 고백.
2. 주님의 법이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대한 시인의 고백.  

. 묵상 말씀: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시119:71).
1. 고난의 유익
삶에 있어서 기쁨은 항상 기쁨의 반대인 슬픔과 같은 고난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이처럼 고난은 기쁨을 위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결국 기쁨이나 고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인 느낌일 뿐, 그것이 절대적인 어떤 속성이나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둘이지만 한 몸통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고난이라는 것을 그런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67)고 했고, ‘고난 때문에 주님의 율례를 배웠다’(71)고 했습니다. ‘주님이 진실하시기에 고난을 주셨다’(75)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고난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요. 주님이 만든 것은 나쁜 것이 없습니다.(딤전4:4) 모두가 다 좋은 것입니다. 좋다고 생각하고,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좋은 것이지요.    
2. 천만 금은보다 더 귀한 주님의 법
총 176절이라는 꽤 긴 구절로 구성된 119편 말씀 가운데서 주님의 법에 대한 시인의 애정과 믿음이 담긴 고백은 여러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가운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일러주신 그 법이, 천만 금은보다 더 귀합니다”(72). 주님의 법이 귀하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이 세상의 권세와 명예, 물질이라는 가치 앞에서 망설임이 생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님의 법에 대한 신뢰는 하지만, 순종하는 데서는 망설이는 그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주님 앞에서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법을 신뢰하고 그 법이 소중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만, 그 법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법에 대한 소중함을 아예 수치로 표현을 했습니다. “천만 금은”이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물질과도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천만 금은으로 아예 수치화한 것은 그런 다짐과 결심에 대한 시인의 진정성을 보여준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