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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213 삶의 의미

2014.02.13 05:45

이주현 조회 수:411

||0||0140213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49-64
. 내 용: 희망과 위로, 노래와 행복
주님의 법도에 대한 끊임없는 찬양과 고백이 희망과 위로와 노래, 행복이 된다는 고백.
2. 교만한 자들과 악인들이 조롱을 하고 줄로 얽어매어도 주님의 법을 잊지 않겠다는 시인의 고백.

. 묵상 말씀: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내게 희망을 주셨습니다”(시119:49).
1. 삶의 의미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게 있다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의미입니다. 의미는 다양하게 나타나는 삶의 규정들입니다. 보람 또는 소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쁨과 쾌락으로도 나타납니다. 뭔가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마음에 반향 되어 느낌으로 와 닿는 것, 그게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의미 없음은 곧 허무입니다. 그 허무는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장내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 의미를 어디서 찾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세상의 권력에서 명예에서 혹은 물질에서 찾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술과 마약, 도박에서 찾기도 하지요. 성서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악인의 길을 가는 사람’(시1편)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그 의미를 주님의 법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품위 있는 의미의 근원인 셈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법에서 희망(49)과 위로(50)와 노래(54), 그리고 행복(56)이라는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2. 덧없는 세상살이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주님의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악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법을 무시’(53)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분노인 셈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은 주님의 법을 지키려는 자를 ‘줄로 얽어매며’(61) 그 법을 지키려는 자들을 방해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주님의 법을 잊지 않았다’(61)고 했습니다. 주님의 법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묻어나는 모습들입니다. 그러한 지극한 사랑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덧없는 세상살이”(54)입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각성인 셈입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언젠가는 심판의 자리에 서야한다는 자각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 덧없는 인생살이를 살면서 시인은 영원한 가치와 원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만납니다. 바로 주님의 법이지요. 그 법속에 담긴 영원함 속에 자신의 유한함을 던집니다. 그리고 하나가 됩니다. 자신도 영원해집니다. 그러니 주님의 법이 시인의 노래가 되었습니다.(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