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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0212 주님의 계명은 나의 기쁨

2014.02.12 08:01

이주현 조회 수:406

||0||014021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33-48
. 내     용: 주님의 계명은 나의 기쁨
1. 주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깨우침을 달라는 기도.
2.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영원토록 지키겠다는 다짐과 그것이 기쁨이 된다는 고백.

. 묵상 말씀: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시119:47)
1. 기쁨을 누리는 길
사람의 욕구 가운데 가장 강한 욕구가 바로 기쁨입니다. 행복도 사랑도 재물도 권력과 명예도 모두가 다 기쁨이 그 핵심입니다. 이 기쁨이 쾌락이나 탐욕으로 변질됐을 뿐, 그 본질은 같습니다. 섬김과 희생을 통해서도 우리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 기쁨은 탐욕이나 쾌락과는 다른  보람이라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또한 차원은 다르지만 그 기쁨의 본질은 같습니다. 그러면, 그 기쁨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어디서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그 기쁨의 근원을 주님의 계명에서 찾고 있습니다.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35)달라고 하면서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3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47)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이 과연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절제와 섬김과 겸손, 희생의 원리 가운데 사는 게 과연 기쁨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명쾌합니다. 갈망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2. 헛된 것
주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킴 살게 해달라는 시인의 고백에 이어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37)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달라’간구는 얼른 이해가 되는 데,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달라는 간구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과연 헛된 것은 무엇이며, 그 헛된 것이 말씀을 지키는데 무슨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헛된 것이란 말 그대로 헛 것입니다. 실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기대가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우상과 같은 것이지요. 결국, 그 헛된 것은 지나친 열망과 자기 확신이 만들어 낸 허상입니다. 일종의 괴물인 셈입니다. 그러한 것에 기대는 것은 주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주의 계명은 영적인 무게감과 분명한 역사적인 맥락이 존재합니다. 보편적인 가치와 공공선이라는 집단 지성이 존재하는 객관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주관적인 확신으로 만들어진 헛된 것과는 충돌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죠. 주의 계명을 우리 맘 깊이 새겨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