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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531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기도

2013.05.31 06:20

이주현 조회 수:512

||0||013053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0:1-18
. 내     용: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기도
1. “하느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현실 고발.
2. 그 속에서 의인이 취할 자세를 언급함.

. 묵상 말씀: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시10:16).
1. 악인의 번영과 형통
권선징악(勸善懲惡)이란 말이 있습니다. 선은 권장하고 악은 징벌한다는 뜻이지요. 세상의 제도와 법은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질 못합니다. “악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잘되고, 주님의 심판은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니, 악인은 오히려···코웃음만 칩니다”(5)는 시편기자의 고백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작동되고 있는 삶의 원리가 정의와 진리에 기반하고 있지를 않다는 뜻입니다.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는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악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리요만, 악이 번성할수록 선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존재가 크게 와 닿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 세계 속에서 악인은 늘 벌을 받고 의인이 늘 잘된다면, 이 세상에 과연 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선을 위해 악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악함 때문에 선함이 드러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상대적인 이 세상에서 말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런 현실과 세상 속에서 의인의 자리는 어디일까, 오늘 본문은 그런 질문과 대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존재와 그들의 번영과 형통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낙심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수용이 꼭 필요합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선과 악이 혼재되고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이지만 ‘하느님은 학대하는 자의 포악함과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는 공의로우신 하느님’(14)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왕’(16)이시오,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17)이라는 고백입니다. 사실, 그거면 끝난 것 아닐까요? 그런 하느님의 공의는 현실 속에서 침묵하지만 그 심판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 그 속에 담긴 것이지요.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심판, 그 하느님에 대한 신뢰는 악인이 번영하는 현실 속에서도 의인의 길을 걷게 하는 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