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18 복을 만드는 사람
2013.05.18 06:31
||0||013051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3
. 내 용: 복을 만드는 사람들
1.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
2. 그런 이는 하는 일마다 잘 될 것.
. 묵상 말씀: “그는...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1:3).
1. 복을 만드는 사람들
성서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모습은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긴 했지만, 그 엄청난 자유를 오용했고 결국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선과 악, 세상과 하느님의 말씀 사이에서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그 선택은 항상 하느님의 뜻과 맞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라는 게 뭘까요? 결국 그런 왜곡과 오류투성이로 점철된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따르는 자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악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죄인,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판단과 동일시하는 오만’을 지적하며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와 자세를 가르치는 대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율법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판단보다는 하느님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삶 속에 나타내 보이기 위해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복을 만드는 사람들’이 맞습니다.
2. 시냇가에 심은 나무
물이 우리나라처럼 흔하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물가에 심은 나무는 평화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쳐다보며 살던 백성들에게 비가 내리지 않아도 끄떡없는 물가에 심은 나무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물가에 심은 나무는 철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웰빙(well-being)인 셈입니다. 그런 삶을 누구나 다 원하지만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복 있는 사람, 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거져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삶 자체가 은총’이라는 뜻은 우리의 삶을 포괄적인 시각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에게는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격과 성품, 그리고 삶의 모습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분명한 자신의 영역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잘 꾸리느냐 잘못 꾸리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삶의 결과는 은총으로 주어진 것들이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 읽은 말씀: 시편1:1-3
. 내 용: 복을 만드는 사람들
1.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
2. 그런 이는 하는 일마다 잘 될 것.
. 묵상 말씀: “그는...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1:3).
1. 복을 만드는 사람들
성서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모습은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긴 했지만, 그 엄청난 자유를 오용했고 결국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선과 악, 세상과 하느님의 말씀 사이에서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그 선택은 항상 하느님의 뜻과 맞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라는 게 뭘까요? 결국 그런 왜곡과 오류투성이로 점철된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따르는 자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악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죄인,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판단과 동일시하는 오만’을 지적하며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와 자세를 가르치는 대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율법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판단보다는 하느님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삶 속에 나타내 보이기 위해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복을 만드는 사람들’이 맞습니다.
2. 시냇가에 심은 나무
물이 우리나라처럼 흔하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물가에 심은 나무는 평화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쳐다보며 살던 백성들에게 비가 내리지 않아도 끄떡없는 물가에 심은 나무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물가에 심은 나무는 철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웰빙(well-being)인 셈입니다. 그런 삶을 누구나 다 원하지만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복 있는 사람, 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거져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삶 자체가 은총’이라는 뜻은 우리의 삶을 포괄적인 시각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에게는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격과 성품, 그리고 삶의 모습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분명한 자신의 영역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잘 꾸리느냐 잘못 꾸리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삶의 결과는 은총으로 주어진 것들이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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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하느님을 바라봤던 시각에 적지않은 변화를 느꼈습니다.
먼저,고난의 유익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도 욥의 세친구들 처럼 인과응보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또한 고난중인 이에게 위로와 힘을 준답시고 어설픈 나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조언과 충고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은 나에게 고난이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왔다면,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이 고난을 통해
하느님께 더욱 다가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로 바꾸려고 합니다.
야구나 골프,수영등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자신의 몸에 힘을 빼야만이 제대로된 스윙이나 샷이 나온다 합니다.
자신의 결백만을 주장하던 욥이 결국 주님앞에 모는 걸 내려 놓으면서
하느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나의 모든것을 하느님앞에 온전히 내려 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려운거 아시죠?)
이번 욥기 말씀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시기가 앞당겨 지리라 확신합니다.
목사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새로이 시작한 시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실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