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16 세 친구에게 주신 말씀
2013.05.16 06:40
||0||0130516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42:7-9
. 내 용: 욥의 세 친구에게 주신 말씀
1. 욥의 세 친구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을 할 때 옳게 말하지 않았음을 언급하심.
2. 그들의 잘못을 대신 빌어줄 중보자로 욥을 지목하심.
. 묵상 말씀: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니, 주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다”(욥42:9).
1. 하느님의 균형감각
하느님께서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욥1:8)으로 인정한 욥의 회개, 결국 그게 욥에게 있어 고난의 의미였습니다. 이 속에 담긴 역설과 아이러니는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의 세 친구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엘리바스와 빌닷, 그리고 소발의 조언과 충고는 한마디로 ‘옳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잘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느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제한이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고난을 받는 것’이라는 지속적인 주장과 권고 속에 담긴 내용입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하느님의 섭리’라는 욥의 고백(욥42:3)처럼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의 판단과 경험 넘어 존재하는 영역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들의 경험과 지적인 깨달음으로 그러한 하느님의 섭리를 제한한 셈입니다. 차라리 인간적인 위로와 동점심으로 대했다면 그런 지적은 없을 터입니다. 이는 하느님 이름,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중보자 욥
이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욥의 세 친구를 위해 하느님은 은총을 베푸십니다. 잘못한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수송아지와 숫양 각 일곱 마리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욥을 제사장으로 하느님과 그 친구들 사이의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욥이 그들의 번제를 대신 드리고, 하느님께 용서의 기도를 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지시한 대로 그들은 그렇게 했고, 하느님은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욥기를 마무리하면서 등장한 ‘중보자’의 역할이 눈에 띕니다. 히브리인들의 문화와 정서 속에 오랫동안 자리한 중보자의 역할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사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사역을 완성하셨고 성령의 역할을 보혜사(Helper)로 규정하시면서 중보자의 역할을 확대하고 연장하셨습니다. 이제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보자의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에게 주신 ‘하늘나라의 열쇠’(마16:19)를 손에 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 읽은 말씀: 욥기42:7-9
. 내 용: 욥의 세 친구에게 주신 말씀
1. 욥의 세 친구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을 할 때 옳게 말하지 않았음을 언급하심.
2. 그들의 잘못을 대신 빌어줄 중보자로 욥을 지목하심.
. 묵상 말씀: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니, 주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다”(욥42:9).
1. 하느님의 균형감각
하느님께서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욥1:8)으로 인정한 욥의 회개, 결국 그게 욥에게 있어 고난의 의미였습니다. 이 속에 담긴 역설과 아이러니는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의 세 친구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엘리바스와 빌닷, 그리고 소발의 조언과 충고는 한마디로 ‘옳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잘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느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제한이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고난을 받는 것’이라는 지속적인 주장과 권고 속에 담긴 내용입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하느님의 섭리’라는 욥의 고백(욥42:3)처럼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의 판단과 경험 넘어 존재하는 영역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들의 경험과 지적인 깨달음으로 그러한 하느님의 섭리를 제한한 셈입니다. 차라리 인간적인 위로와 동점심으로 대했다면 그런 지적은 없을 터입니다. 이는 하느님 이름,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중보자 욥
이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욥의 세 친구를 위해 하느님은 은총을 베푸십니다. 잘못한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수송아지와 숫양 각 일곱 마리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욥을 제사장으로 하느님과 그 친구들 사이의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욥이 그들의 번제를 대신 드리고, 하느님께 용서의 기도를 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지시한 대로 그들은 그렇게 했고, 하느님은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욥기를 마무리하면서 등장한 ‘중보자’의 역할이 눈에 띕니다. 히브리인들의 문화와 정서 속에 오랫동안 자리한 중보자의 역할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사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사역을 완성하셨고 성령의 역할을 보혜사(Helper)로 규정하시면서 중보자의 역할을 확대하고 연장하셨습니다. 이제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보자의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에게 주신 ‘하늘나라의 열쇠’(마16:19)를 손에 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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