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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507 엘리후의 착각

2013.05.07 06:19

이주현 조회 수:570

||0||013050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36:1-33
. 내     용: 엘리후의 착각
1. 욥에게 계속 말을 이어가는 엘리후가 자신에 대하여 언급.(1-4)
2. 의로운 자를 옹호하시는 하느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권하고(5-12), 욥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의미를 언급함.(13-21)
3. 무한한 하느님의 능력에 대하여 언급.(22-33)

. 묵상 말씀: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십시오”(욥36:22).
1. 착각
인간이 하느님을 얼마나 인식할 수 있을까요? 경험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이치를 깨달아가는 존재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창조하신 그 분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보여주면 하느님을 믿겠다’는 로마군인의 말에 한낮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바라보게 했다는 어느 유대 랍비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 하나도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 어찌 하느님을 볼 수 있겠느냐’는 역설인 셈입니다. 결국 그러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섭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고백하고 그 분의 은총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하느님에 대한 최고의 지식일 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그러한 인식에 대한 영역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발언(2)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말에는 거짓이 전혀 없고 건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정직과 진리
어느 여름날 하루살이와 매미가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매미가 ‘내일 보자’고 인사했더니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지?”라고 대답을 했더랍니다. 하루살이에게 있어서 내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일 자체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살이가 그 사실을 경험하지 못해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때때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정직함을 진리나 진실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생략한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까지 받아들이는 자세,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영역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성서에서 전해주는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다 그런 태도를 가졌던 분들입니다. 자신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던 것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요 하느님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동의와 신뢰였던 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함부로 ‘하느님이 없다’든지 ‘하느님을 대신한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