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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30504 엘리후의 정죄와 저주

2013.05.04 07:22

이주현 조회 수:561

||0||013050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34:16-37
. 내     용: 엘리후의 조언- 욥에 대한 정죄와 저주
1. 의로우신 하느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악인을 벌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언급.(16-28)
2. 욥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정죄와 저주.(29-37)

. 묵상 말씀: “하느님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악인들을 처벌하십니다”(욥34:26).
1. 엘리후가 믿는 하느님
엘리후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주권과 능력, 나아가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까지 사상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론가 이거나 상당한 영적 체험을 한 영성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가 말한 하느님에 대한 소상한 설명은 구구절절 옳습니다만, 가슴에 울리는 감동이 없습니다. 왕같은 권력을 쥐고 잘못한 사람을 잡아다가 몽둥이로 다스리고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사납고 무서운 권세자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사랑이 빠졌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공의만을 주장하면 하느님의 의로우심은 절름발이가 되고 맙니다. 공의라는 커다란 기둥과 함께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하느님의 속성을 떠받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와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공의도 사랑의 한 면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 없는 공의는 하느님에 대한 왜곡입니다.
2. 심판자 엘리후
그렇게 공의로우신 하느님만을 소개하던 엘리후는 어느덧 그 하느님의 이름으로 욥을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정죄하고 저주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주권과 의로우심에 대하여 설교 하더니, 이제 그런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이름으로 재판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고 나무라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엘리후는 욥을  분별력과 지혜가 없는 사람(34),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여대는 사람(35), 악한 자(36), 하느님을 모욕하는 반역자(37)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정말 욥이 그런 사람일까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느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욥1:8)고 했는데 말입니다. 엘리후의 주장대로라면 욥은 고난을 당했기에 죄인이 되고 악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이 세상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소외도 이들은 모두 죄인이고 반역자인 셈입니다. 그건 하느님의 공의가 아니라 엘리후의 억지일 뿐입니다. 정작 정죄를 당해야 할 사람은 자신의 억지를 하느님의 공의로 착각을 하는 엘리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