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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악한 농부의 비유

 

읽은 말씀: 20:9-19

 

묵상 말씀:

13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말하였다. '어떻게 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겠다. 설마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14 그러나 농부들은 그를 보고서, 서로 의논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래서 유산이 우리 차지가 되게 하자.'

15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바깥으로 내쫓아서 죽였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9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자기네들을 겨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 때에 예수께 손을 대어 잡으려고 하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포도원 농부들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자신의 종을 보내어 소작료를 받아오게 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농부들은 그 주인의 종에게 소작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때려서 보냅니다. 심지어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될까요?

여기서 포도원 농부들은 당시의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하는데, 주인이 포도원을 맡겨 놓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스릴 권한을 주셨지, 세상을 다 가지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포도원을 가꾸면서, 욕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의 의식을 갖는 것과 진짜 주인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의 일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의 의식이 아닌 마치 진짜 주인처럼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그랬습니다. 내 욕심으로 살아가면,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것 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욕심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는 주인

포도원 농부들에게 자신의 종을 보내지만, 번번히 맞고 돌아옵니다. 그래도 주인은 계속해서 종들을 보냅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그들에게 보내는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는 끝없이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배반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시 종을 보내시어 용서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어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끝까지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에게 내밀고 계신 손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끝없이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그 끝에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농부들을 찾아간 주인은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끝에는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심판에 때에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악한 포도원 농부처럼 마지막 심판대에 설 것인가? 아니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편에 설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