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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2022년 4월 4일 사순절 묵상자료

오목사 2022.04.02 08:33 조회 수 : 9

대관식

 

본문말씀: 14:3~9

3.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4.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6.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7.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2~3번 천천히 깊이 읽으십시오. 지금 나에게 말씀하심을 새기며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기 이틀 전,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신 예수께 한 영인이 다가옵니다. 그녀는 귀중한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러자 몇몇이 정의의 이름으로 이 행동에 시비를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을 변호사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질 것이라고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칭찬이 다소 과하게 들립니다. 여인의 헌신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 일이 복음 전파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 일인가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여인의 행동을 귀중한 헌신으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행동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의미는 헌신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누가복음에서 죄많은 여인이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이야기나(7:36-50), 요한복음에서 나사로와 마르다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헤 향유를 부은 이야기(12:1-8)와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이 전하는 이 여인의 행동은 누가복음의 죄 많은 여인이나 요한복읨의 마리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행동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베다니의 여인은 예수님의 발이 아니라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의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가 되십니다. 이 이름없는 여인의 행동은 누가의 죄 많은 여인이나 요한의 마리아처럼 섬김과 헌신의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마치 예언자나 제사장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과 같은 대관식의 성격을 지닌 행동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이 이름 없는 여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선포가 위대한 것은 이 기름 부음이 대관식과 동시에 장례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적어도 마가복음 내에서는 고난 받고 죽으셔야 할 메시아로 예수님을 바라본 유일안 사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벅찬 감격도 이해할 만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정체와 죽음을 동시에 이해한 사람을, 그 한 사람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